광고닫기

[발언대] 그날의 함성, 오늘의 대한민국

Los Angeles

2026.06.24 18:0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일곱 번도 더 변할 만큼 긴 시간이 지났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날의 포성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한민족의 비극이었고, 동시에 자유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평화롭던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 학교 운동장은 피난민들의 임시 거처가 되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가 생이별해야 했고, 수많은 젊은이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선으로 달려갔다.
 
참전용사인 나는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전쟁은 기록 속의 역사가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현실이었다. 총탄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고,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땅이 뒤집혔다. 어제까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전우가 오늘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낙동강 방어선의 장병들은 최후의 보루를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뒤집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장병이 “내가 물러서면 조국이 무너진다”는 각오로 끝까지 진지를 사수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수많은 전투가 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 속에서도 끝까지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자유를 지켜낸 장진호 전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투혼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얼어붙은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싸웠던 장병들의 희생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초석이었다.
 
또한 철원 일대에서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는 조국 수호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전투였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고지의 주인이 스무 번 넘게 바뀔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산은 포탄에 깎여 흰 말의 등처럼 변했고, 고지는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가 새겨진 성지가 됐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무명용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피와 땀, 그리고 목숨으로 지켜낸 값비싼 결실이다. 전쟁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눈부신 발전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나는 전우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말하던 청년, 갓 태어난 아이의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던 병사, 전쟁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웃던 학도병,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바쳐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냈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배우고 일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선열의 피와 눈물로 지켜낸 숭고한 유산이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머문 일이 아니다.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미래의 약속이다.
 
포성은 멈춘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라는 역사의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각 전선에서 울려 퍼졌던 조국 수호의 함성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날의 희생을 기억하는 국민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