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 너무나 수치스럽다" 2000여명 한인들 순식간에 침묵 32강 진출해 LA 올줄 알았는데…
종료 휘슬 울리자 곳곳에서 탄식 홍명보 전술, 용병술 모두 실패 정몽규 축협 회장, 책임론 직면
24일 LA 한인타운 리버티공원에서 열린 한국-남아공 조별리그 3차전 단체 응원전에서 한국이 0-1로 뒤진 채 경기 종료를 앞두자 한인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졸전 중의 졸전이었다. 한마디로 ‘몬테레이 참사’였다.
북중미 월드컵 32강 고지를 눈앞에 두고 24일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치러진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0-1로 무릎을 꿇었다. 단체 응원전이 열린 LA 한인타운 리버티 공원에 모인 2000여 명의 한인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순식간에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비기기만 해도 32강행을 확정 지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제대로 된 반격도 해보지 못한 채 패했다.
현장에서 단체 응원에 나선 강영준(35·LA)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기였다”며 “차라리 치열하게 싸우다 운이 없어 패했다면 받아들이겠는데, 오늘 경기는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수준”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홍명보 감독의 전략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한 예상 밖의 카드도 통하지 않았다. 선발 출전한 오현규의 볼 터치는 전반에만 10회 미만에 그쳤다. 50회를 기록한 김민재와 비교하면 공격수임에도 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한 셈이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카드 3장을 한꺼번에 꺼내 들었으나, 이는 독이 됐다. 교체 투입된 손흥민 역시 미국프로축구(MLS) LAFC 소속으로 정규리그에서 계속됐던 무득점 침묵이 월드컵에서도 이어지며 끝내 한국팀을 구해내지 못했다.
후반 막판에는 황인범이 다리에 경련을 일으켰음에도 잔여 교체 카드가 얼마남지 않아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다. 전술과 용병술이 모두 실종된 경기였다.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 리버티 공원의 응원 열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끝까지 ‘대한민국’을 외치며 현장을 메운 한인 대부분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패배 직후 선수들의 모습이 비치는 대형 스크린만 멍하니 바라봤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정규선(49·다우니)씨는 “한국팀이 32강에 진출해 LA로 올 것으로 믿고 이번 주 일요일 일정을 모두 비워뒀었다”며 “내 생애 처음으로 한국팀의 월드컵 경기를 LA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결과가 너무 허망하다”고 전했다.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던 한인타운 상권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인타운 내 치킨 전문점 ‘만남의 광장’의 주부권 대표는 경기 직후 “승리한 멕시코팀 팬들은 가게로 마구 몰려드는 반면, 경기를 지켜보던 한인 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 대조를 이루고 있다”며 “한인들의 허탈한 분위기가 현장에서 그대로 체감된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도 최악의 여론 속에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정 회장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대회 종료 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퇴 선언과 별개로 그동안 정 회장이 보여온 행보와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투명한 절차 등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며 향후 거센 책임론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번 패배로 1승 2패(승점 3점)를 기록하며 조 3위로 주저앉았다. 이번 대회는 12개 조 가운데 조 3위를 기록한 팀 중 상위 8개 팀이 32강에 합류한다.
이에 따라 한국팀의 32강 진출 여부는 다른 조의 경기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처지가 됐다. 당초 최소 무승부만 거뒀어도 최대 한인 사회가 형성된 LA에서 32강전을 치를 수 있었던 한국팀은, 이번 패배로 또다시 다른 팀의 상황을 지켜보며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 극적으로 조 3위 자격으로 32강에 진출하더라도 다른 조 1위의 강호와 맞붙어야 하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