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아시아계 주민 절반 이상은 미국이 더 이상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계(AAPI) 인권 단체 연합인 ‘스톱 더 헤이트(Stop the Hate)’는 오는 30일부로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이 만료됨에 따라 관련 증오범죄 방지 프로그램들이 전면 중단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해당 프로그램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증하자 이에 전방위로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마련됐었다.
가주 정부가 조성해 온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1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지역 비영리 단체들의 법률 지원, 정신건강 상담, 안전 교육, 피해자 구제 서비스 등을 뒷받침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아시아계를 비롯해 흑인, 원주민, 중동·북아프리카계, 무슬림, 시크교도, 유대인 등 다양한 소수계 커뮤니티가 혜택을 받아왔다.
프로그램 책임자인 만주샤 쿨카르니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 대표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증오범죄 피해자들을 지탱해 온 지역사회 기반의 최후 안전망이 무너지게 된다”며 “피해자들은 앞으로 모국어로 된 법률 상담과 정신건강 치유 지원을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청소년들은 학교 내 차별과 괴롭힘의 아픔을 공유하며 치유하던 안전한 공간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쿨카르니 대표는 특히 최근 들어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겨냥한 적대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다시 확산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지 피부색이나 출신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거나 ‘연방 이민세관집행국(ICE)에 신고하겠다’는 식의 폭언과 위협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민자와 유색인종이 사회적 불안과 갈등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민자 사회의 체감 온도는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AP통신과 NORC 공공문제연구센터, 그리고 AAPI 데이터가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태계 성인의 64%가 “미국이 더 이상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인 나라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응답자의 51%는 지난 1년 동안 자신이나 지인이 이민 신분 문제와 관련해 일상생활에서 직간접적인 제약을 받았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불심검문에 대비해 시민권 서류나 체류 신분 증명서를 늘 휴대하거나, 타 주 이동 및 여행 계획을 변경하고, 일상적인 이동 동선을 바꾸는 등의 위축된 행태가 포함됐다.
조사에 참여한 연구진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사회 안팎에서 오랫동안 ‘영원한 이방인(Permanent Foreigner)’이라는 거대한 고정관념의 벽에 직면해 왔다고 진단했다. 특히 연방 정부의 이민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일수록, 이 같은 소외 인식과 불안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AAPI 데이터의 카르틱 라마크리슈난 사무국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이 오랫동안 정체성으로 유지해 온 ‘이민자의 나라’라는 전통적인 상징성과 가치관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