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경력직 채용에 나서면서 반도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선 이번 채용이 사실상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의 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일명 ‘르팡’) 인력을 겨냥했다고 본다.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커스텀(맞춤형) HBM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 수혈이라는 것이다.
2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경력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채용 공고를 보면 ‘HBM Foundry PI’ 직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단 공정(최신 미세공정) 실무 경험자를 우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HBM Digital Design’ 직무는 저전력 설계와 로직 공정 실무 경험 등을 요구했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신경망처리장치(NPU) 등 로직 반도체 설계 경험과 파운드리 선단 공정 경험을 갖춘 삼성전자 시스템LSI·파운드리 인력이 지원할 수 있는 분야다.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와 시스템 설계 인재 확보에 나선 것은 차세대 HBM 경쟁이 메모리 기술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패키징과 로직 설계, 선단 공정을 아우르는 종합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고도화된 로직 반도체 설계 기술을 제품에 직접 적용하고 TSMC 등 외부 파운드리 공정을 정확히 이해해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SK하이닉스는 6월 월간 경력 채용을 시작했다. 사진 SK하이닉스 직무설명서 캡처
SK하이닉스의 경력 채용은 수시로 이뤄지지만, 이번 채용은 시점이 공교롭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삼성전자 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 직원 사이에선 성과급 격차에 따른 내부 불만이 큰 상황이다.
적자 사업부라는 이유로 메모리사업부보다 크게 낮은 수준의 성과급을 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노사 합의에 따라 메모리사업부는 연봉 1억원 기준 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지만, 르팡 등 비메모리 사업부는 2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지난 12일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경영 현안 설명회를 열어 직원들 설득에 나섰지만, 성난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시스템LSI사업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모바일경험(MX) 사업부와 파운드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채용 공고가 나온 날 삼성전자 내부는 술렁였다. 사내 게시판에는 SK하이닉스 이직을 언급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의 한 엔지니어는 “사무실에서 대놓고 SK하이닉스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산업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6세대 제품 HBM4의 양산 출하를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충남 삼성전자 천안캠퍼스에서 HBM4 제품이 양산 출하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두 회사의 인재 확보 경쟁은 한층 격화할 분위기다. AI 반도체는 메모리와 로직, 패키징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만큼 관련 경험을 갖춘 인력은 제품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HBM4 성능 평가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린 배경에도 메모리와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 간 기술 협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종합반도체기업(IDM)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보상 체계 개선과 함께 조직 결속 회복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서적 연봉』의 저자인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과급 논란 이후 삼성전자 내부 결속이 크게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보상 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사업부 간 ‘화학적 결합’을 높여야 핵심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