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V’ 개봉 50주년을 맞은 김청기 감독이 경북 문경시 자택에서 분신과도 같은 로보트 태권V 모형·산수화와 함께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아빠 엄마가 어린이에게 줄 여름방학 최적선물!’ ‘피서보다 유익한 방학선물 등장!’ ‘어린이 위한 완전 냉방가동’.
띄어쓰기도 무시한 열정적인 신문 광고는 극장의 열기로 이어졌다. 1976년 7월 24일, ‘로보트 태권V’가 개봉했다. 한국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작. 관객 13만 명이 들어왔다지만 20만, 29만 설도 있다. “여하튼 대한극장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버스를 빌려 다른 극장으로 실어 나를 정도였으니까.” ‘태권V의 아버지’ 김청기(85)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다시 파안대소했다. 50년 전 태권V를 보던 어린이도 이런 모습이었을 듯. 이 여름, 경북 문경의 산밑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50년 전처럼 땀을 흘리며 또 다른 태권V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청기 감독은 513장에 이르는 콘티를 점검하면서 아홉 번째 로보트 태권V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Q : 아홉 번째 태권V 시리즈인가요.
A : “맞아요. 콘티 513장을 작업했어요.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하니 올겨울엔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인공 김훈은 중년의 티가 완연했고, 태권V는 투구를 쓴 적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리고 있었다. 콘티 옆에는 펜화와 수묵화로 재탄생한 태권V가 있었다.
1976년 유현목 감독이 로봇 애니 제안
Q : ‘펜’을 다시 잡으셨네요.
A : “2022년부터죠. 어릴 때 서울 만리동 적산가옥에 살았는데, 벽에 그림을 그리다 아버지에게 딱 걸렸죠. 그런데 오히려 ‘참 잘 그리네’라며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에 자신이 생겼어요. 혼자 그림을 배워 나갔어요. 학교에서도 사생대회에 나가라더군요. 남들은 좋아했겠지만 전 기겁했습니다. 사생대회처럼 ‘보고 그리는 것’보다 ‘상상력으로 그리는 것’이 더 좋았거든요. 18세부터 『쾌걸 조로』 등을 내며 만화를 그렸어요. 그게 8년. 이후로 펜을 좀처럼 잡지 않았으니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잡은 거죠.”
1950~60년대 사회는 만화를 ‘악의 근원’으로 인식했다는 게 김 감독의 말. 만화책까지 불사르던 시절이었다. “만화를 관두고 세기영화사에 들어갔다가 다시 동양방송(TBC)에서 ‘황금박쥐’(1967년 1월~1968년 3월 방영) 등 일본 애니메이션 하청을 받아 제작했는데, 영 마음에 안 드는 게 동작이 툭툭 끊어질 정도로 원화를 너무 아끼는 겁니다. 원화를 늘렸더니 자연스러워졌는데, 바로 일본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제작비 나가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예 관뒀죠. 뭐.”
Q : 태권V 제작 시기와 좀 떨어진 때인데요.
A : “애니메이션 광고(CF)를 찍었어요. ‘라면땅’ ‘아카시아껌’ 등이었죠. 아이디어가 발현된 시절입니다. 연출 감각도 키웠고요. 돌이켜보니 태권V의 밑작업이 된 셈이었습니다. 밑천도 좀 생겼고요.”
드디어 1976년. 유현목 감독이 찾아와 로봇 애니메이션을 제안했다. 당시 방영 중이던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의 인기몰이는 대단했다. 완구가 쏟아져 나오고 TV 없이 셋방살이하던 아이들은 주인집 안방 TV 앞까지 달려가 기어코 볼 정도였다. 김 감독은 “그런 아이들을 위해 뭔가 만들자는 제안”이었다고 떠올렸다. 제작자 유현목, 촬영감독 조복동, 음악감독 최창권, 음향감독 김벌래, 시나리오 작가 지상학…. 스태프 수백 명에 원화도 3만7000장으로 애초 1만2000장에서 세 배 늘었다. 그래서 제작비도 4500만원으로 폭증. 투자금은 달랑 300만원.
그래픽=이윤채 기자
50년 전인 1976년 7월 개봉 당시 '로보트 태권V' 상영을 홍보한 신문 광고. [중앙포토]
그리고 6개월. 김 감독이 말한 그 무엇, ‘로보트 태권V’가 태어났다. 아이들이 몰렸다. 관객 30만 명을 찍었다는 설도 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별들의 고향’(1974·이장호 감독)이 46만 명을 불러들였으니 대단한 성과였다. 사람들은 태권V를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설로 부르기 시작했다. 후일 ‘세월이 가면’을 부른 최호섭(최창권 음악감독의 아들)의 주제가도 곳곳에서 따라 불렀다. 참고로, 주인공 김훈의 목소리는 당시 39세였던 배우 김영옥이 맡았다.
태권V가 만든 도시 전설도 있다. 그즈음 1975년 만들어진 국회의사당과 더불어서다. 내용인즉슨, 대한민국 위기 때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형 지붕이 열린다. 그리고 악보에 적힌 대로 4분의 4박자로 빠르고 씩씩하게 ‘빰바라밤바~ 빰바라밤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V~’. 이어 끝 노랫말 그대로 ‘무적의 우리 친구’ 태권V가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속 로보트 태권V. 김청기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모티브로 헤드 부분을 그렸다고 했다. [중앙 포토]
'로버트 태권V' 시리즈 제 3탄 수중 특공대의 한 장면. [중앙 포토]
Q : 실제로 국회에도 가셨죠.
A : “네. 2011년 1월이었어요. 의원들이 화합이란 구호 아래 연 행사였는데, 다들 와서 한마디씩 던져주고 갑디다. ‘덕분에 잘 보고 잘 컸다’고요.”
한데, 분위기는 이렇게만 흐르지 않았다. 빛과 그림자처럼, 김 감독에겐 지난 50년간 ‘표절’이란 단어가 등을 겨누고 있었다. ‘마징가Z’를 베꼈다는 거였다. 그래서 ‘친일 애니메이션’이란 평까지 나왔다. 대놓고 물어봤다.
Q : 마징가Z 표절 논란이 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까.
A :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점도 달라집니다. 창작이냐 표절이냐. 참고냐 베끼기냐. 태권V는 100% 창작도, 100% 베낀 것도 아닙니다. 전 벤치마킹이란 표현을 쓰고 싶어요. 그걸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했죠. 그래서 태권도를 가져왔습니다. 태권도 2~3단 유단자들을 데리고 선릉 왕릉 앞에 가서 태권도 시범을 펼치게 했죠. 그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그려 태권V에 입혔어요. 그래서 태권V의 태권도 실력은 3단 정도로 보입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과 달리 감동의 스토리라인도 넣었어요. 인간을 죽이는 안드로이드 메리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죠. 그리고 주인공인 인간을 살리고 떠납니다. 하트(인공심장)를 남기고요. 사람들이 아직도 태권V를 소환하는 이유는 이런 감동의 서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리가 없으면 아무리 배우가 잘생긴들 흥행이 되겠습니까.”
연내 전북 무주에 ‘태권브이랜드’ 개장 태권V는 ‘표절’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 완구업체가 임의로 태권V를 제작했는데, 마징가를 표절했으니 저작권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2018년 법원은 “태권V는 마징가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저작물 또는 이를 변형·각색한 2차 저작물”로 판결했다. “결국엔 ‘로보트 태권V’로 이름 붙였지만 투자자로 나선 지방 흥행사들은 제목에 마징가를 넣자고 했어요. 일본 작품을 베끼자는 제안이었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참고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청기 감독이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모형 로보트 태권V가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최영재 기자
Q : 지방 흥행사들이 갑이었군요. 당시 완구업자들도 입김이 센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 “마징가와 달리 태권V는 심플해요. 완구 제작을 위해 일부러 터치를 간결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만으론 돈벌이가 되지 않거든요. 완구·책받침·공책 등 하나의 브랜드를 다양한 콘텐트로 펼쳐야 경쟁력이 있었어요. 솔직히 태권V 차기작 중엔 완구 제작자가 요청해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Q : 그래서 돈이 좀 들어왔습니까.
A : “아뇨. 오히려 태권V로 집을 날렸습니다. 빚이 3000만원이더군요. 그땐 러닝개런티고 뭐고 판권은 지방 흥행사가 가진 구조였거든요. 이후 ‘똘이장군(1978)’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친아들 외에 아들이 셋 더 있어요. 빚을 안겨준 큰아들 ‘로보트 태권V’, 빚을 갚아준 둘째 아들 ‘똘이장군’, 돈을 벌게 해준 셋째 아들 ‘우뢰매(1986)’ 등입니다(웃음).”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아들로 삼은 아버지 김청기 감독이 펜으로 그린 산수화. '큰아들' 태권V와 '둘째 아들' 똘이장군이 등장한다. 김홍준 기자
그는 그러면서 펜화 하나를 보여줬다. “여기 큰아들 태권V, 둘째 아들 똘이장군.” 김 감독이 사는 문경 산골을 배경으로 태권V가 ‘잘 지냈니’라며 손짓을 하고, 똘이는 ‘어, 형이네’ 하는 표정. 서울에서 내려온 2016년부터 수묵과 펜으로 그리는 ‘엉뚱 산수화’ 중 하나였다. “어릴 때처럼 상상력만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스토리보드를 완성한 ‘심청전’ 외에 ‘별주부전’ ‘흥부놀부전’ 등 우리 동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5년 안으로, 내 나이 90이 되기 전에. 우리 K컬처가 얼마나 강한데”라면서다.
태권V는 김 감독에겐 ‘업’이었다. 과업으로, 간혹 업보로. 올해 안에 전북 무주군이 ‘태권브이랜드’ 문을 열 계획이다. 또다시 ‘일본’ ‘표절’ 등의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노감독은 자신의 배를 힘껏 쳐보라고 했다. 퍽퍽. 탄탄했다. “50년 전 극장 앞 아이들처럼, 태권V처럼 계속 달리려면 이렇게 강해야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다시 파안대소. 악수를 청한 그의 손이 억셌다. 85세 노장의 웃음과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