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관문인 말라가 공항. 연간 이용객 2492만명이 오가는 이 공항은 수도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과 같은 보안검색 체계와 운영 시스템을 사용한다. 규모는 다르지만 서비스 기준은 같다. 전국 46개 공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운영하는 스페인 공항운영 그룹 아에나(AENA)가 구축한 통합 운영 체계 덕분이다.
스페인 말라가 공항 출국장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모습. 박영우 기자
공항마다 운영 주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스페인에서는 35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상이다. 여러 공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운영하는 모델은 안전과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 공항운영사를 탄생시켰다.
AENA는 지난해 전 세계 공항에서 3억8480만명의 여객을 처리했다. 매출은 64억유로(약 10조원), 순이익은 21억유로(약 3조3000억원)로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스페인 본토와 도서 지역 46개 공항을 운영하는 데서 출발한 회사는 현재 영국 런던 루턴공항과 브라질 주요 공항 운영권까지 확보하며 세계 최대 공항운영사로 성장했다.
AENA의 출발점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급증하는 항공 수요를 기존 관료 조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1991년 독립 공기업인 AENA를 출범시켰고, 2015년 지분 49%를 증시에 상장해 민간 자본을 유치하면서도 국가가 51% 지분을 유지해 공공성과 효율성을 함께 확보했다.
AENA가 다른 나라 공항 운영 모델과 차별화되는 핵심은 ‘DORA(공항관리계획)’다. 정부와 공항 운영사가 5년 단위로 투자 규모와 공항시설사용료를 정하는 제도로, 운영사는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고 항공사는 비용을 예측할 수 있다.
엔젤 산스 AENA 전략·공공정책 총괄이사가 스페인 공항 운영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영우 기자
AENA는 46개 공항의 보안검색 장비와 수하물 처리 시스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공동 구매해 비용을 낮추고 운영 기준을 표준화했다. 또 수익성이 높은 공항의 운영 경험과 투자 역량을 지방공항과 공유해 네트워크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대표 사례가 헤레스 공항이다. AENA는 혼잡한 주변 공항을 이용하던 항공사들에 헤레스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초기 취항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규 노선을 유치하며 지역공항의 경쟁력을 높였다.
말라가 공항도 같은 전략 아래 성장했다. AENA는 제3여객터미널과 제2활주로를 확충했고 관광 인프라와 항공사 유치 전략이 맞물리면서 라이언에어와 이지젯, 부엘링 등이 거점으로 삼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광당국의 투자도 이어지며 접근성이 개선됐고 연간 이용객은 1200만명 수준에서 지난해 2492만명으로 늘어 스페인 4위 국제공항으로 성장했다.
AENA의 운영 모델은 국내 공항 정책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인천국제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김포·김해·제주 등 14개 공항은 한국공항공사가 각각 운영하는 이원화 체계다. 반면 스페인은 AENA가 허브공항과 지방공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투자와 운영, 노선 전략을 함께 추진한다. 공항 간 경쟁보다 네트워크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운영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앙헬 산스 AENA 전략·공공정책 총괄 이사는 “AENA 목표는 개별 공항의 흑자와 적자가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의 경쟁력”이라며 “큰 공항이 축적한 경험과 투자 역량을 작은 공항과 공유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AENA 모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