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특파원 칼럼] 미국서 두 번째로 작은 델라웨어주의 지혜

중앙일보

2026.06.28 08:16 2026.06.28 13:2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미국 워싱턴 DC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델라웨어주의 작은 해변 도시 리호보스 비치가 나온다. 여름이면 메릴랜드·버지니아 등 인근 지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귀임을 앞둔 필자도 특파원 생활 마지막이 될 가족여행을 최근 리호보스에서 보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택스 프리(State Sales Tax Free·주 판매세 면제)’가 주는 가성비 때문이다. 한 식당에서 가족이 늦은 점심을 해결하면서 그 위력을 실감했다. 나초, 치킨텐더, 새우튀김, 콜라 두 잔을 주문해서 나온 음식값은 52.47달러. 주(州) 판매세는 한 푼도 붙지 않는다. 팁만 ‘국룰’에 따라 음식값의 대략 20%인 11달러를 써냈더니 최종 금액은 63.47달러(약 9만7600원)가 됐다.

같은 식사를 필자가 거주하는 버지니아주에서 했다면 판매세 6%와 음식세(Meals Tax) 4% 등 10%의 세금이 붙어 총 68.83달러(약 10만5900원)가 됐을 것이다. 몇 달러 차이지만 영수증을 받는 순간 체감 가성비는 제법 크게 다가왔다.

지난 26일 미국 델라웨어주 리호보스 비치를 찾은 관광객들. 리호보스=김형구 특파원

지난 26일 미국 델라웨어주 리호보스 비치를 찾은 관광객들. 리호보스=김형구 특파원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대부분의 주가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판매세를 도입했지만, 델라웨어는 뉴햄프셔·오리건 등과 함께 지금까지도 이를 두지 않는 몇 안 되는 주다. 미국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작고 산업 기반도 많지 않은 델라웨어는 “차라리 사람들이 우리 주를 찾게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면세 혜택을 즐기려는 외부 관광객과 쇼핑객으로 늘 활기가 넘친다.

세수는 어떻게 확보할까. 델라웨어는 소비자 대신 식당·식료품점·호텔 등 사업자의 총매출에 1% 안팎의 매출세를 걷는다. 무엇보다 델라웨어는 사람을 모으듯 기업도 끌어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기업 친화적인 회사법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형평법원(Court of Chancery) 덕분에 미국 500대 기업의 약 3분의 2가 이곳에 법적 주소를 두고 있다. 쿠팡의 모회사도 델라웨어 법인이다. 델라웨어가 판매세 없이도 재정이 흔들리지 않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세금을 적게 걷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걷을 것인지를 다르게 설계한 것이다.

델라웨어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작은 주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가든 지방정부든 경쟁력은 세금을 얼마나 많이 걷느냐가 아니라 사람과 기업이 모여드는 환경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세금은 경쟁력의 결과이지, 경쟁력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델라웨어는 웅변하고 있다. 리호보스에서 받아든 영수증 한 장이 이를 새삼 일깨웠다.





김형구([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