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들까지 포함된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안을 일방적으로 작성해 국민의힘 측에 통보했다. 이미 22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의 임기가 5월 말로 끝났고, 두 차례 상임위원 명단 제출 요청에 국민의힘이 응하지 않아 국회법에 따라 의장의 직권 선임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끈질긴 대면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야당 원내대표실에 팩스를 보내 상임위 구성안을 통보한 것은 국회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여야 간 합의를 이끌어내 원만한 국회 운영을 해야 할 책임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다. 조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경선 때부터 “협치보다 속도”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은 당적을 떠나 여야 간 갈등을 중재하고 의회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라는 취지에서 신분이 무소속으로 바뀐다. 하지만 조 의장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여당만을 위한 국회 운영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원 구성의 최대 걸림돌은 법사위원장 자리다.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로 가기 전 거쳐야 하는 최종 관문이어서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17대 국회 이후 원내 제1당이 국회의장을,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다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21대 국회 들어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 관행을 깨고 전반기 법사위원장을 차지했고, 이번에도 야당에 내줄 수 없다며 완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효율적인 국회 운영’이나 ‘책임정치’라는 이름을 달아 법사위까지 싹쓸이하는 것을 ‘뉴노멀’로 만들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수당을 배제하고 법사위를 장악한 채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일 뿐이다. 이를 통해 민주당이 ‘조작기소 특검법’ 등 정권이 원하는 법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민심 이반으로 인한 정치적 부메랑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야당을 ‘국회 전면 보이콧’으로 떠미는 빌미를 주게 된다. 민주당은 야당과의 진정성 있는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야 하고, 조 의장은 끝까지 타협을 이끌어내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왜 우리 국회가 예전에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배분하는 전통을 세웠는지, 그 전통이 깨진 뒤 국회가 어떤 모습으로 흘러 왔는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