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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홍명보·이임생 ‘잃어버린 4년’…박지성 “수습엔 10년”

중앙일보

2026.06.28 13:00 2026.06.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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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현지시간) 팀 베이스캠프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돌아와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회복훈련을 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현지시간) 팀 베이스캠프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돌아와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회복훈련을 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에게 4년을 더 줘도 될텐데…”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천수는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상 처음 48개국 32강 체제로 치러진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1승 2패)은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적 성적으로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거둔 16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던 팬들은 “4년이란 시간을 대체 어떻게 쓴 거냐”며 분노했다. 이천수는 “벤투 감독 때는 한국 축구 색깔이 있었다. 욕을 먹어도 확고한 철학을 갖고 밀어 붙였다. 벤투와 재계약을 안 한다고 했을 땐 축구인 입장에서 아쉬웠다”며 무색무취의 한국 축구를 꼬집었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4년 2월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4년 2월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카타르 대회 이후 벤투 감독이 사임하면서 한국 축구가 꼬이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023년 2월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을 벤투의 후임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벤투가 한국에 입힌 조직적인 ‘빌드업 축구’를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술 색채가 있지도 않았다. 손흥민 같은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축구로 오히려 조직력을 와해했다.

한국보단 미국 자택에 머물며 ‘원격 근무’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한국 대표팀 감독을 지내면서 해외 방송에 출연했다. 본업보단 ‘휴가’와 ‘아르바이트’에 더 관심이 많은 클린스만을 두고 팬들은 분노했다.

그 결과물은 2024년 2월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에서 당한 0-2 완패다. 클린스만은 “우승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유효슈팅 0개의 졸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회 도중 손흥민과 이강인이 내분을 일으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KFA는 위약금 70억원을 주고 클린스만을 1년 만에 경질했다. KFA는 정식 감독 선임을 미루고 황선홍-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로 버텼다. 그러다 황선홍 감독이 겸임했던 올림픽 대표팀이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향한 사퇴 여론이 들끓었다.

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통해 4선에 도전하는 정몽규 후보가 2024년 1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통해 4선에 도전하는 정몽규 후보가 2024년 1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감독 선임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협회는 클린스만 경질 이후 5개월간 제시 마시 등 유럽 무대에서 검증된 외국인 감독들을 면접했다. 그래 놓고 막판에 홍 감독을 선택했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1무 2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거둬 지도력에 의구심이 많았다. 당시 감독 면접 등 선임 작업을 주도한 건 이임생 협회 기술총괄 이사였다. 특정 학맥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이들 간 밀어주기 의혹이 일기도 했다. 축구계 전반이 이처럼 구태의연하게 운영되는 가운데 한국 축구는 끊임없이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감독 선임에 관여했던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이 “홍 감독 선임을 몰랐다. 내부에서 국내 감독을 무조건 지지하는 위원들이 많았다”고 폭로하자, 절차적 정당성은 완전히 훼손됐다. 정 회장이 감독 선임 과정에 개입하는 등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홍 감독은 2024년 9월 첫 경기였던 팔레스타인전에서 6만 관중의 야유를 받는 등 처음부터 리더십이 흔들렸다.

홍 감독 체제는 지난해 7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경고음은 꾸준히 울렸다. 지역 예선에서 팔레스타인, 오만 등 최약체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는 등 졸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에선 2.5군이 출전한 일본에 끌려다니다 우승컵을 내줬다. 친선경기에선 브라질전(0-5)과 코트디부아르전(0-4) 등 강팀을 상대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다디움에서 김민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260623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다디움에서 김민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260623


경고음을 무시한 대가는 월드컵 본선에서 참혹하게 돌아왔다. 김민재, 손흥민, 이강인 등 역대 최고라 불리는 황금세대에 대진운까지 따라주었는데도 홍명보호는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홍 감독은 “남아공전 패배 원인을 모르겠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남겼다. 박지성 JTBC 해설위원은 “2014년 월드컵을 그대로 반복했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곳에서 잘못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4년 만에 원점보다도 더 깊은 심연으로 추락한 한국 축구는 완전히 새로 판을 짜야 하는 기로에 섰다. 정 회장은 지난해 2월 문체부의 압박에도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지만 월드컵 이후 사퇴하기로 했다. 홍 감독과 결별도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다만 ‘이번에도 감독 교체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게 축구인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축구 관계자는 “4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값비싼 대가는 치렀다. 이번엔 감독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축구협회, K리그, 심판, 유소년 등 한국 축구의 전반을 다 뜯어고쳐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축구가 4년간 행정 파탄과 독단으로 퇴보한 사이, 한때 라이벌이었던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 스웨덴 등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박지성 위원은 “한국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피주영.박준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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