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담은 '일상툰'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에피소드, 반려동물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일상 등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일상툰의 가장 큰 강점은 '공감'이죠.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웃고, 때로는 위로를 받습니다. 태국인 남편과 부모님 등 가족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펀자이씨툰' 역시 이러한 일상툰의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혀요. 펀자이씨툰의 엄유진 작가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 없이도 독자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선사하며 일상의 가치를 전하죠. 이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엄유진 작가를 만나 창작의 원천과 일상툰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엄유진(맨 오른쪽) 작가는 고가람 학생모델과 김도연·왕선재 학생기자(왼쪽부터)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라며 ‘나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Q : 일상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일상툰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그림과 글로 간단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꾸준히 이어가다 보니 지금의 일상툰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사실 결혼 전에는 그림책이랑 일러스트 작업을 했었는데요. 결혼 후 출산하고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일을 못 하게 됐고, 심심해서 취미였던 기록물을 SNS에 자유롭게 올렸던 게 지금의 일상툰으로 자리 잡게 됐죠.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편인데, 그림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일상툰은 제 일상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거였고 앞으로도 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기록할 생각이에요.
Q : 엄유진이라는 실명 대신 '펀자이씨'로 활동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엄유진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동명이인이 너무 많더라고요(웃음). 작가 활동을 하면서 사용할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제가 좀 피부가 까만 편이어서 '까무샤'라는 필명을 만들었는데, 정이 붙지 않더라고요. 다른 필명을 고민할 때 태국 출신 남편 성인 '펀자이씨'가 생각났죠. 당시 일상툰이 남편과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국에 와서 함께 살아가는 남편의 성을 작품 속에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펀자이씨'가 태국어로 의식주와 약을 뜻한다고 해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인 만큼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는 일상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2018년부터 SNS에 일상툰을 올린 펀자이씨툰의 엄유진 작가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 없이도 독자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선사한다.
Q : 주로 연필로 작업하시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만화를 시작한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연필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서 제 생각을 가장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죠. 또 빠르게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컴퓨터 작업은 편리한 점도 많지만, 저는 연필로 바로 쓰고 그리는 방식이 더 익숙합니다. 틀려도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는 것도 편리하고요. 무엇보다 떠오른 생각을 즉시 기록할 수 있다는 점도 좋고 특히 연필 작업할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도 너무 좋답니다(웃음).
Q : 일상툰 소재 발굴은 어떻게 하는지, 가족을 주요 소재로 삼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가족은 제게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됐어요. 만약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거나 혼자 살았다면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지 않았을 거예요. 다만 가족 이야기를 할 경우, 조금만 잘못 다뤄도 당사자들이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려고 해요. 실제 이름 대신 가명을 사용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죠. 또 억지로 포장하거나 꾸며낸 이야기보다는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에피소드를 그리는 편입니다. 너무 좋은 얘기만 하다 보면 독자분들이 공감하기도 어렵고 판타지 같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요(웃음).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잃었을 때’ 가장 크게 느끼고 소중하게 와 닿는 것 같다며 일상을 매일 기록하라고 전한 엄유진 작가.
Q : 가족을 그리면서 오히려 새롭게 알게 된 모습이 있었나요.
너무 많습니다. 일상툰을 작업하면서 가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저 부모님으로만 봤는데, 일상툰을 그리면서 관찰자 시선으로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게 됐죠. 그러다 보니 한 사람으로서의 삶과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엄마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면서 가족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거죠. 일상툰 작업을 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Q : 작가님 작품을 보면 사소해 보이는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작가님은 일상의 소중함을 언제 가장 크게 느끼시나요.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잃었을 때' 가장 크게 느끼고 소중하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우리는 매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 역시 언제든 지금의 일상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만화를 그리면서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됐죠. 그래서 저는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도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고 잊지 않기 위해 꼭 기록해요.
엄유진(왼쪽에서 둘째) 작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편인데, 그림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말했다.
Q : 일상툰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나 공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상툰은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화려한 히어로나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님과 친구, 이웃처럼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들에 대해 말하잖아요. 그래서 독자들도 작품을 보면서 '우리 엄마도 저런데'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하고 자연스레 본인의 삶을 떠올리게 되고요. 그런 순간에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고, 서로의 경험을 공감하면서 위로가 되는 것 아닐까요.
Q :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나 댓글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연재를 꾸준히 하다 보니 독자분들과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생겼어요. 어느 날 제가 SNS에 무지개 사진을 올렸는데 독자분들이 자신이 있는 지역에서 본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기 시작했어요. 부산부터 미국·일본 등 세계 곳곳의 무지개가 릴레이처럼 이어졌죠.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는데 같은 마음으로 참여해 주셨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저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느껴져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죠. 그래서 가끔 세계 곳곳의 무지개를 본답니다.
가족은 제게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됐다고 설명하며 부모님과 친구, 이웃처럼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일상툰으로 표현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말하는 엄유진 작가.
Q : 웹툰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이 많은데, 창작자 선배로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왔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다른 사람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때부터 '나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족 이야기였어요. 가족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고, 제가 가장 잘 아는 소재였거든요. 꼭 웹툰이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그걸 모르면 결국 남들이 원하는 것만 하게 되거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장면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야기를 찾을 수 있어야 하죠. 창작자는 특별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해요. 자신만의 시선과 경험을 믿고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작품이 될 거예요.
동행취재=고가람(서울 송화초 5) 학생모델·김도연(경기도 안현초 4)·왕선재(서울 마포초 5) 학생기자
엄유진 작가가 그린 자신의 엄마와 딸 짠이 모습.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후기
저는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엄유진 작가님 인터뷰가 기대됐습니다. 취재 전 '펀자이씨툰'이라는 일상툰을 처음 읽었는데, 재미있게 술술 읽혔어요. 엄 작가님은 처음에 일기로 시작한 취미가 쌓여 일상툰이 되고 책으로까지 펴냈다고 말씀하셨죠. 일상을 매일 꾸준히 기록하는 게 정말 멋졌고, 저도 나중에 엄유진 작가님처럼 일상툰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앞으로도 엄유진 작가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고가람(서울 송화초 5) 학생모델
첫 취재로 잡힌 엄유진 작가님과의 인터뷰가 엄청 기대돼 도서관에서 작가님이 쓴 책을 빌려 읽어봤어요. 왜 일상툰을 그리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죠. 일기처럼 SNS에 올린 만화가 책으로 출간된 사실도 알게 됐고 가족이랑 태국여행 갔던 얘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작가님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는지 궁금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꽉 채워진 노트를 보여주셔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작가님을 인터뷰하고 저도 하루에 있었던 일을 꼼꼼히 일기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도연(경기도 안현초 4) 학생기자
엄유진 작가님과 1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매우 짧게 느껴질 만큼 흥미로웠어요. 저는 만화가가 꿈이라 엄유진 작가님 만나는 날을 무척 기대했죠. 엄 작가님이 소소한 가족 이야기와 일상을 소재로 매우 활기차고 재미있는 내용을 글과 그림에 담아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게 인상적이었죠. 저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엄 작가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고, 그림을 꼭 잘 그릴 필요가 없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엄 작가님은 인터뷰 중 단 1초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는데, 그런 유쾌하고 당당한 모습이 작가님의 글과 그림에 잘 표현된 것 같았어요. 나중에 커서 작가가 된다면 꼭 엄 작가님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