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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6월에 벌어진 전쟁

Los Angeles

2026.06.28 18:40 2026.06.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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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아름다운 6월에도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다. 한국의 6·25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고  미국에서도 영국과의 전쟁, 인디언과의 대규모 전투가 많았던 것이 6월이다.    
 
미국이 처음 영국과 싸운 것은 1775년 6월 17일 일어난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다. 전쟁(war)이라 하지 않고 전투(battle)라 부르는 까닭은 같은 민족 간의 소규모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12년의 전쟁은 달랐다. 규모도 컸지만, 미국이 정식으로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 전쟁이었다.  
 
1775년 ‘벙커 힐 전투’ 당시 수많은 보스턴 주민이 영국군을 포위했다. 이때 영국군 토마스 게이지 중장은 본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보스턴 주민들은 영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벙커 힐을 점령하고 찰스 강 북쪽을 요새화했다. 그러자 윌리엄 호우 영국군 소장이 25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요새를 공격했고, 미군은 윌리엄 프레스컷 대령을 중심으로 맞섰다. 1775년 6월 17일 시작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미군은 전사자만 500여명에 달했다.  
 
1812년 6월 1일 당시 매디슨 미국 대통령은 연방 의회에 영국과의 전쟁 선포를 요청했다. 그는 미국 해양업자와 무역업자들을 보호하고 영국군의 인디언 지원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연방 의회는 1812년 6월 18일에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의 외무장관은 미국의 전쟁 선포 이틀 전 이미 미국 의회의 전쟁선포는 무효라고 선언했지만, 그 내용은 전쟁 발발 때까지 미국에 전달되지 않았다. 영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전쟁 선포를 ‘메디슨의 전쟁(Mr. Madison’s war)’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의 서부개척 시기 몬태나주 북쪽 지역에 살고 있던 수 인디언(Sioux Indian) 부족과 백인 이주민 간의 갈등이 심했다. 이 와중에 육군 중령 조지 커스터와 그의 부대원들이 수 인디언 마을을 습격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 인디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커스터 중령과 그의 부하들을 죽였는데 이 사건이 1876년 6월 25일 발생한 ‘수 인디언 전쟁(Sioux Indian War)’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6·25 전쟁과 같은 날이다.  
 
‘6·2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5성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 10 특수군단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했다. 이 지역은 조수의 차이가 9m나 되는 곳이다. 맥아더 장군은 제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 휘하의 군인들을 서울로 진격시켜 9월 26일 서울을 회복했다.  
 
이후 1951년 3월 중공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북한을 완전히 궤멸하려는 맥아더 장군의 작전계획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11일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사령관에서 해임했다. 일설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조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맥아더 장군은 1964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회고록은 지하 납골당에 보관되어 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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