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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그래도

Los Angeles

2026.06.28 18:41 2026.06.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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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 수필가

김윤희 / 수필가

한때 남가주 한인 경제의 한 축이었던 봉제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생산 단가가 치솟으면서 봉제 공정의 상당 부분은 이미 타주와 해외로 빠져나갔다. 히스패닉계 노동자들마저 떠나기 시작했고, 일거리가 있어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삼십여 년을 봉제 공장 한길만 걸어온 형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같이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을 접자니 평생을 쏟아부은 시간이 무너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다시 남 밑에서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몇 주 전,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큰 온라인 쇼핑몰 납품 계약을 따냈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며칠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른 일정을 미루고라도 가겠다고 했다. 공장에 도착해 보니 예전과 달리 썰렁했다. 기계 소리는 여전했지만, 사람의 기척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완성된 옷을 정갈하게 접어 사이즈별, 컬러별로 분류해 봉투에 넣는 포장 작업이었다. 단순해 보였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옷더미 앞에서 허리를 펼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내 손끝에서 완성품이 하나씩 쌓일수록 형님의 근심은 조금씩 덜어지는 것 같아 마음은 가벼웠다.
 
돌아가지 않는 재봉틀 앞 빈 의자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스무 대 정도의 기계 소리만 공장 안을 메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형님은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납기가 늦어져 계약이 끊기지는 않을지, 형님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침묵이 기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시간은 기계 소리 사이로 흘러갔고, 마지막 박스들이 하나둘 트럭에 실려 나가자, 형님은 내 손을 꼭 잡았다.  “동서, 정말 고마워. 동서 아니었으면 제때 못 내보냈을 거야.” 처음 해보는 일이라 도움이 되었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그 인사 앞에서 더 묻지 않았다. 공장을 나선 뒤에도 기계 소리보다 형님의 한숨이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묵직한 적막 속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도 살아진다. 우리 안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그래도’다.”  나는 그 다정한 섬 이름을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 보았다.
 
 모진 세파가 삶을 거칠게 흔들 때, 우리는 쉽게 무너질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다. ‘그래도’ 가족이 있고, ‘그래도’ 곁에 사람이 있고, ‘그래도’ 내일은 다시 온다는 믿음 하나로 오늘을 견딘다.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순간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래도’를 품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붙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님의 공장 재봉틀 소리가 오래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고단한 삶을 버티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그래도’라는 말 하나가 불씨처럼 남아 있기를. 미래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지켜낸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래도, 그렇게 하루는 흘러간다.  

김윤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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