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모 급여화보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보장이 우선이다″라며 정부의 탈모치료제 급여화 사회적 숙의 과정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추진하던 대국민 토론회를 행사 닷새 전 돌연 취소했다. 중증·희귀 질환보다 탈모 지원이 우선이냐는 비판과 건보 재정 부담 우려 등 반대 여론이 최근 확산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29일 보건복지부는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탈모 급여 확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 추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초 복지부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다음 달 4일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홀에서 탈모 치료제 급여 적용 확대를 논의하는 ‘모두의 토론회’를 열 예정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국민참여단 200여명과 전문가 등이 참석해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 필요성과 급여 대상 범위 등을 놓고 토론할 계획이었다.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논의한다는 복지부의 '모두의 토론회' 배너. 사진 복지부 홈페이지 캡처
토론회를 앞두고 복지부는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탈모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인지, 개인이 부담해야 할 미용·노화의 영역인지 등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왔다.
이날 복지부는 토론회 취소 배경에 대해 “토론회를 앞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탈모 급여 확대에 대한 여러 입장이 충분히 제기된 점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계 안팎에선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다.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탈모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의 근간인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면으로 뒤흔드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충분한 우선순위 검토와 재정 영향 평가 없이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논의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 운용의 방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는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 확대가 2030, 그 중에서도 남성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건보 적용이 거론되는 탈모 치료제가 여성에게는 투약 금지된 약물이라서다. 이런 비판을 우려해 정민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지난 17일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이대로 탈모약만 딱 떼어서 발표하면 2030 여성은 등을 돌린다. 청년 정책의 무게 중심이 또 남성으로 쏠린다는 인상이 쌓이면 등 돌린 핵심 지지층을 정책으로 한 번 더 밀어내는 것”이라고 적었다.
202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유튜브 쇼츠에 올라온 탈모치료 급여화 공약 내용. 사진 유튜브 캡처
복지부는 탈모 치료제에 대한 건보 적용을 중점 과제로 검토해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요즘에는 생존의 문제”라며 탈모 치료에 대한 건보 적용 검토를 주문하면서다. 당시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의학적인 탈모는 건보에서 치료를 지원해주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정 장관은 6개월 만인 지난 11일 정부 출범 1주년 정책간담회에서는 “실무 검토를 마쳤다”며 하반기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탈모를 단일 의제로 한 공론화는 중단하지만, 청년층 건강 문제 해결 등을 위한 정책 검토는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 발표를 예고했던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 확대 방안의 추진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복지부는 “모두의 토론회는 중단하더라도 청년을 비롯한 국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 발굴은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