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남권(서남권)을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육성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권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고, 정부는 전력·용수·인력 등 핵심 인프라 구축을 전폭 지원한다. 용인 등 수도권 반도체 생산시설 완공 시점도 7~12년 앞당기는 등 속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 확보 방안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정부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삼성과 SK 등 기업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분야에선 속도전(Speed)·거점전(Stronghold)·선도전(Spearhead)에 총력 지원(Full-support)을 더한 ‘3S+1F 전략’을 추진한다. 핵심은 서남권 신규 생산거점 조성과 수도권 생산능력 조기 확충이다
호남권(서남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전공정 팹을 각각 2기씩, 총 4기를 구축한다.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전력·용수 등 인프라를 책임지고 공급하고 인허가부터 부지 조성, 건축 절차까지 단축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력과 용수 등 꽤 비용이 드는 부분이지만 반도체 특별법에 지방에 우선 지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며 “새로운 거점을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균형을 잡는 일인 만큼 100% 지원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과 평택 등 수도권 생산 거점은 조기 완공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5의 팹1, 팹2를 순차적으로 건설하는 대신 동시에 건설해 완공 시기를 3~4년 당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 일반산단은 기존 계획보다 12년 앞당긴 2033년, 삼성전자 국가산단은 7년 앞당긴 2040년 완공을 추진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수도권 메모리 생산능력을 5년 내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충청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81조원을 투자해 대규모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팹 건설을 추진한다.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대경권(대구·경북)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혁신 거점으로 육성한다. 김 장관은 “대한민국 전체를 반도체 클러스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문제는 속도전과 거점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다. 정부가 제시한 투자 규모는 파격적이지만 전력·용수 공급 방안은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호남권 반도체 단지에 전력 6.3GW(기가와트)와 하루 65만t의 용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1.4GW급 신규 원전 4~5기 설비용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날 “서남권은 전력과 용수를 적기에 차질 없이 공급하고 그 이상의 물과 전기도 미리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수자원공사가 확보한 댐 여유 수량과 지방자치단체·발전용 댐 등을 활용하면 용수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의 영산강·섬진강 유역물관리종합계획(2021~2030년)에 따르면 영산강 유역은 이미 생활ㆍ공업용수 수요의 73%를 섬진강 유역에 의존하고 있다. 섬진강 유역 역시 여수산단의 용수 사용 증가 등으로 2025년 이후 최대 20만㎥의 물 부족이 전망됐다. 영산강은 수질 등도 주요 5대강 중 최하위 수준으로 좋지 않다. 반도체 팹은 반도체 세정에 사용되는 물은 불순물이 완벽히 걸러져야 해 물의 질 역시 중요하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용수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데이터부터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한빛원전을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으로 간헐성을 보완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상당수 원전이 계속운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ESS 구축 비용도 막대해 구체적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ESS가 얼마나 필요하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추산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서는 송전망 확충은 핵심 과제다. 정부는 기존 선로 증설과 신규 송전선로 지중화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호남권 산단은 100% 지원을 언급했지만 용인산단에 대해서는 “지방 투자 등을 고려해 재정 지원을 어느 정도 할지 토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용인 클러스터의 조기 완공이 호남권 반도체 단지 성공의 중요한 전제가 될 것”이라며 “송전망 조기 구축을 위해 주민과 지자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반도체와 함께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도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제시했다. 새만금과 대경권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생산거점을 구축해 AI 로봇 글로벌 3강 도약을 추진하고, SK·GS·네이버 주도로 총 8.4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관련 투자 규모는 약 550조원이다. SK는 2035년까지 데이터센터 규모를 15GW로 확대하는 2단계 프로젝트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