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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지원하되 간섭 않는 인내자본이 딥테크 생태계 살린다”

중앙일보

2026.06.29 08:10 2026.07.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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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107〉 인내자본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유니콘 기업 27개사 등 제3벤처붐 본격 시작.’ 올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5년 국내 벤처투자 및 펀드 결성 동향과 유니콘기업 현황’ 보고서의 제목이다. 신규 벤처투자 금액이 1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1조7000억원) 증가했다고 중기부는 강조했다. 투자 금액 기준 역대 둘째로 높은 실적을 올렸고, 투자 건수로는 8542건으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라고 평가했다.

27개 유니콘 중 2개만 딥테크
벤처자본, 장기 투자 꺼려해
간섭·규제에 단기 수익률 급급
‘인내자본공사’ 설립 절실해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STARTUP NATION KOREA 2026)’이 지난 17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딥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인내자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라운드업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메릴랜드 기술개발공사(TEDCO)의 트로이 르메일-스토벌 대표, 세계기술사업화전문가연합(ATTP)의 알윈 웡 의장,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장, 기술보증기금 김대철 상임이사, 소바젠 박철원 대표, 좌장을 맡은 이정동 서울대 교수. 김경록 기자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STARTUP NATION KOREA 2026)’이 지난 17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딥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인내자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라운드업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메릴랜드 기술개발공사(TEDCO)의 트로이 르메일-스토벌 대표, 세계기술사업화전문가연합(ATTP)의 알윈 웡 의장,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장, 기술보증기금 김대철 상임이사, 소바젠 박철원 대표, 좌장을 맡은 이정동 서울대 교수. 김경록 기자

하지만, 내용이 문제다. 유니콘 27개사 중 딥테크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은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두 곳뿐이었다. 대부분 비즈니스플랫폼이나 화장품·게임·숙박 등으로, 세계시장에서 기술패권을 쥐고 경쟁할 만한 기업은 극히 드물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세계 1~2위, GDP 대비 특허출원 수 세계 1위의 나라에서 거둔 성과로는 의외다. 더구나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가 대학·출연연 R&D의 기술사업화 성공사례가 아니라, 대기업 출신이라는 걸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R&D 패러독스’는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첨단기술이 패권이 되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 언제까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대기업의 추격형 기술에만 의존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R&D에서 새로운 국가 성장엔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혁신시스템의 어디가 고장 나 있는 걸까.

죽음의 계곡서 헤매는 K딥테크
박철원

박철원

지난 17~18일 서울대에서 열린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는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포럼 슬로건 ‘딥테크: 죽음의 계곡을 넘어(Deep Tech: Beyond the Valley of Death)’는 한국 딥테크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구였다. 이날 포럼에서 혁신창업대상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은 바이오 스타트업 소바젠의 박철원 대표는 초기 바이오·딥테크 기업이 마주한 잔인한 투자 현실을 고발했다. 박 대표는 “바이오 분야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 5년째 혹독한 ‘겨울’이 이어지고 있다”며 “순수 신약개발 기업은 매출이 없어 대출이나 보증을 받기가 극도로 어렵고, 오직 벤처캐피털(VC) 자금에만 의존해야 하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국내 VC 펀드의 만기가 7~8년으로 짧아 기술을 완숙시키기도 전에 기업공개(IPO)를 서두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비판했다. 박 대표는 “우리 회사가 KAIST 내부 캠퍼스에 입주해 수십억원대 연구장비와 공간을 저렴하게 활용하는 ‘현물성 인내 자본’의 특혜를 누렸음에도, 지난해 초에는 임원들이 몇 달씩 임금을 받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이 극심했다”며 “투자자들이 3~5년 주기로 지분을 넘겨받으며 버텨주는 ‘배턴 터치형 세컨더리(secondary) 시장’ 같은 다양한 파이낸싱 모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트로이 르메일-스토벌

트로이 르메일-스토벌

미국 메릴랜드주의 공공기술 창업 투자기관인 TEDCO의 트로이 르메일-스토벌 대표와 세계기술사업화전문가연합(ATTP) 의장인 알윈 웡 박사는 글로벌 혁신자본의 트렌드를 소개하며 한국 시스템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했다. 스토벌 대표는 “TEDCO 자금의 원천은 주 정부와 연방정부이지만, 우리는 투자수익을 정부에 돌려주지 않고 100% 내부에 유보해 재투자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투자 포트폴리오도 민간 VC와 똑같이 10%만 대박이 나고 45%는 본전, 45%는 완전히 파산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대박 수익률에만 목매지 않고, 지역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 원금만 돌려주더라도 큰 수익을 낸 기업만큼 뜨겁게 축하해준다”고 말했다.

알윈 웡

알윈 웡

웡 박사는 한국의 정부 주도 창업경진대회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정부가 창업대회를 열어 몇백만원씩 흩뿌리는 생색내기식 지원은 연구원들을 창업현장은 꿈도 못 꾸는 ‘대회 쇼핑족’으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웡 의장은 “대학교수나 공무원들은 실패 책임을 두려워하는 ‘보신주의’ 생리가 있다”며 “대학 당국은 뒤로 빠지고, 성공한 자산가나 동문 벤처기업가들이 펀드를 짜서 후배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게 하고, 여기에 정부가 ‘매칭 펀드’로 보증효과(certification effect)를 만들어야 삼성 같은 대기업과 글로벌 큰손이 움직인다”고 조언했다.

장기 투자 감행했던 한국 금융의 추억
이정동

이정동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현재 한국 시장에는 돈이 넘쳐나지만, 단기수익만 좇을 뿐, 위험을 감당하면서 장기 투자하는 인내심 있는 돈은 메말라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국 금융체제의 역사적 변화를 짚으며 현 금융권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1970~1980년대 추격기에는 정부와 은행, 기업 내부 유보금이 삼각 편대를 이뤄 배터리와 LCD 등 목표가 확실한 산업에 수년간의 적자를 감당하는 ‘장기 투자’를 감행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1차 금융개혁을 거치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1차 금융개혁으로 시장원리에 따른 여신 심사와 건전성 감독이 강화되면서 선진금융의 토대가 마련됐지만, 금융이 위험을 ‘감당’하는 대신 ‘관리’하는 데만 집중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리스크를 지지 않은 채 예대 마진에만 의존해 막대한 지대 추구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점, 기업들이 극심한 단기 성과 압박으로 인해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도 혁신 투자를 꺼리는 점을 대표적인 ‘인내 자본 고갈’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과거의 ‘건전성’ 중심 개혁에서 벗어나 ‘인내 자본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제2차 금융개혁’의 3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국가 주도의 ‘인내자본공사’ 설립이다. 이 영역은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만큼, 영국 등 선진국처럼 초장기 투자를 지향하고 정부가 뒷단의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부담해 주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연기금 등 공적 장기자금의 동원과 미스매치 해소다. 이 교수는 “가장 긴 호흡을 가져야 할 연기금이 안전성과 단기적 잣대에 묶여 가장 짧게 돌고 있다”며 미국 벤처캐피탈의 성장사례처럼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연기금을 장기 성장산업으로 흘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출구 시장’의 개혁이다. 한국은 투자자본 출구의 대부분을 M&A로 해결하는 미국과 달리, 절반가량을 기업공개(IPO)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며 대기업의 스타트업 M&A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돈은 주되 운영은 시장 전문가에
손수정

손수정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장 역시 국내 공공기술금융 거버넌스의 ‘공급자 중심 파편화’와 ‘안정성 편중’을 질타했다. 손 실장은 “기술금융은 미래를 향한 ‘도전’을 보는 기술과 ‘신용·안정’을 추구하는 금융이 결합한 영역인데, 현재 한국의 공공펀드는 규제와 수익률에 묶여 지나치게 안정성만 좇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부처별·기관별로 융자·보증·투자 라인이 제각각 쪼개진 복잡한 거버넌스를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공공 금융은 철저히 공급자 마인드로 설계돼 있어 정작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할 스타트업에는 불친절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제는 기술의 속성을 이해하고 스케일업 단계별 위험을 정부가 함께 분담하는 ‘국가 혁신금융 프레임’으로 시각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STARTUP NATION KOREA 2026)’이 17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딥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인내자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열린 라운드업 토론회에서 기술보증기금 김대철 상임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STARTUP NATION KOREA 2026)’이 17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딥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인내자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열린 라운드업 토론회에서 기술보증기금 김대철 상임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대철 기술보증기금 상임이사는 "딥테크 생태계를 살리는 핵심은 단순히 자금을 대는 것을 넘어, 기업이 단기성과나 금융기관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R&D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의 단기융자나 까다로운 사후규제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평가 기반의 장기보증과 투자 연계형 복합금융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딥테크 스타트업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한국형 인내자본 금융 패러다임'을 기보가 앞장서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해묵은 R&D 패러독스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마침 지난 4월 금융위원회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민성장펀드의 첨단산업 생태계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간접투자인 민관합동펀드에 35조원, 직접투자에 15조원을 배정해 단기·보수적 투자에 치우쳤던 기존 정책 펀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간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고위험 프로젝트에 대규모 인내자본을 공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도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 인내자본 투자를 막고 R&D 패러독스를 낳은 주범은 다름 아닌 정부 관료의 간섭과 규제다. 금융위의 이번 대책 역시 방향성은 맞지만, 정부가 ‘돈은 주되 운영은 시장 전문가에게 전권을 맡기고 손을 떼지’ 않는 한, R&D 기반 딥테크 생태계 혁신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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