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이선우의 퍼스펙티브] 선관위 개혁, 독립성과 책임성 간 균형 잡기부터 시작돼야

중앙일보

2026.06.29 08:14 2026.06.29 13:3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6.3 지방선거에서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빚은 선거관리위원회발 참사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일이다. 선거 당일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하지 못하다니. 명백히 참정권을 침해받은 유권자들, 특히 2030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는 이 대목에서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국회는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까지 추진할 태세다. 선거관리 부실의 진상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며, 이 가운데 비리나 중과실이 발견된다면 누군가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상조사만으로 끝나선 결코 안 된다. 단지 누군가의 법적 책임만을 묻고 현 선관위 체제는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번과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선관위에 결함이 있음은 이미 누차 경고되었으나,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와 개헌의 난해함 탓에 개혁은 계속 유보되었다. 현시점에서 진상조사 이상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 변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지난 1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선관위의 강한 독립성과 그 위험성
사실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가 누리는 독립성은 사법부에 못지않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 속에서 당시까지 내무부가 관장하던 선거 사무 일체가 1960년 개헌을 통해 독립적인 선관위로 이관된 후로는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았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국정감사는 가능하나, 짧은 기간 및 막대한 감사 대상의 수 등을 감안하면 실효적인 감시·감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지난번 국민적 공분을 샀던 선관위의 채용비리 의혹 등도 이러한 외부 견제의 취약성으로부터 비롯된 바 크다.

물론 행정부 소속의 감사원이 사법부를 감사하지 않듯 선관위를 감사하는 것도 헌정구조상으로는 적절치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관위 기능 일부를 행정안전부 등으로 이관하자는 주장 역시 황당한 부정선거 논란을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시점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선관위 감사만을 위해 또 다른 감시기구를 설치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함으로써 국회의 감사 역량을 대폭 증진하는 방안이 있겠으나, 개헌 사항이라 이 또한 가시적이지 않다.


결국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은 지키면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민주적 책임성을 확실히 부과하는 것뿐이다. 현행 한국 선관위 체제는 헌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상당히 독립적이다. 하지만 책임이 면제된 독립은 방종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심판’의 독립성에 상응하는 민주적 책임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설령 감시자 즉 ‘심판’ 역할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이기만 한 국가기관은 존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감시자는 과연 누가 감시할 것인가?”란 고전적인 딜레마가 생기기 때문이다. 독립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공정성 또는 중립성을 위한 핵심적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선 소위 ‘심판’에 해당하는 국가기관들의 독립성과 책임성 간 균형을 정교하게 모색한다.

예컨대, 독일에서 연방대법관의 임기를 장기간 보장하고 재판은 물론 사법 사무에 대해서도 자율성을 부여한 것은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하원과 각 주정부가 함께 이들을 선출토록 한 것은 사법부에 강한 민주적 책임성을 부과하기 위함이다. 강한 독립성을 보장받는 데 반해 사후적인 외부 감시·감독은 어려운 만큼,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사전적 통제라도 극대화하자는 취지인 셈이다.

이렇듯 직접 선출되지는 않으나 간접적으로 책임성이 부과된 대법관들은 사법부에 관해 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지게 된다. 만약 독일에서 부실 재판이 만연하거나 비리 등으로 얼룩진 판결의 왜곡이 드러난다면, 응당 그 책임은 법관들의 수뇌인 대법관들에게 돌아가게 될 터이니 사법부를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끌도록 유인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오른쪽)과 위철환 위원장 직무대행(상임위원)의 모습. 임현동 기자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오른쪽)과 위철환 위원장 직무대행(상임위원)의 모습. 임현동 기자

한국 선관위 개혁의 방향
흥미롭게도, 현행 한국 헌법상 선관위에 대한 민주적 책임성의 부과 체계는, 법원과는 다소 다르나 헌법재판소와 흡사하다. 중앙선관위원 9인은 국회가 3인, 대통령이 3인,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하고 국회의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따라서 후보자의 공정성은 물론 도덕성, 전문성도 헌법재판관에 준하는 수준으로 검증돼왔다. 이는 향후 수행하는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엄중한 책임으로 각인될 것인바 비교적 강한 사전적 통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선관위원장은 이들 중 호선되는데, 대체로 대법관 중 한 사람이 맡는 게 관례로 되어 있다.

선관위 사태, 진상조사 만큼 재발 방지 대책 절실
한국 선관위는 독립성만큼 책임성 부과되지 않아
청문회 안 거치는 사무총장이 인사·예산 등 총괄
책임성 부여 받는 선관위원들이 선관위 이끌어야
문제는 이렇듯 민주적 책임성의 차원에서 사전적 통제에 입각해 임명된 선관위원들이 선관위를 실질적으로 통솔하며 이끌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상임위원 1인을 제외하면 선관위원장까지 모두 비상임직이다. 반면 선관위의 거의 모든 실무·인사·예산은 사무총장이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형상 책임성은 선관위원들에게 부과되는데, 실질적 권한은 인사청문회도 받지 않는 사무총장이 대부분 행사해 온 것이다.

이렇듯 불균형한 구조 속에서 장관급인 선관위원들은 실질적 권한이 없는 만큼 자신들에게 부과된 책임 또한 엄중히 여기지 않게 될 공산이 크다. 또한 사무총장 이하 선관위 관료들은 외부 감시의 공백 속에서 헌법상 독립성을 느슨한 업무 기강 및 도덕적 해이에 대한 면책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므로 선관위 개혁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의해 임명된 중앙선관위원들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그 책임 또한 확실히 지도록 거버넌스 구조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꼭 법관이 아니더라도, 대표성을 갖고 민주적 책임성을 구현할 자격과 역량이 있는 인사들이 선관위원으로 임명되어야 한다. 다행히 이는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책임성이 부여되는 체계를 실질화하는 것만이 근본적이면서도 우선적인 해법이다. 세부적인 후속 개혁들도 결국은 거버넌스 구조가 정상화된 이후라야 비로소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