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 8명과 홍명보 감독이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전날 멕시코 현지 훈련장에서 사퇴를 밝힌 홍 감독과 함께 조현우(울산), 김민재(뮌헨), 황인범(페예노르트), 황희찬(울버햄프턴), 백승호(버밍엄시티), 김문환(대전),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설영우(즈베즈다)가 이날 먼저 돌아왔다. 새벽 3~4시의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입국장엔 50~60여 명의 팬과 유튜버가 몰렸다. 이들은 홍 감독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홍명보 나와”라며 외쳤다.
홍 감독과 선수단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성적 부진에 분노한 팬의 거센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오며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일부 팬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선수들을 향해 “홍명보 한국에서 꺼져” “홍명보 부끄러운 줄 알아라” “20억 토해내라” “홍명보, 돈 뱉고 나가” 등을 외쳤다. 일부 시민은 선수들에게 “고개 숙이지 말라”며 따뜻한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대표팀은 당초 선수 8명이 먼저 입국장을 통과한 뒤, 홍 감독이 맨 마지막에 나오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입국장에 고성이 오가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일부 선수와 경호원, 경찰, 축구협회 관계자 등 20여 명이 홍 감독을 호위한 채 가장 먼저 입국장을 나섰다. 골키퍼 조현우가 홍 감독 호위 무리에 선두에 섰다. 홍 감독은 ‘팬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특별한 답을 안 했다. 입국장을 벗어난 홍 감독은 미리 대기하던 승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홍 감독이 입국장에 들어서 떠나기까진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함께 귀국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홍 감독보다 10여 분 늦게 입국장에 나타나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떠났다. 정 회장을 본 한 축구 팬은 개껌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하다 경찰에게 제지 당했다.
30일 새벽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국가대표 선수들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앞서 온라인상에 홍 감독에 대한 살해 협박 글이 올라오는 등 안전 우려가 커지자,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환영 행사와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했다. 한국이 개최국이었던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원정으로 치른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공항 귀국 행사 없이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경찰 기동대 등 160여 명의 경비 인력이 대거 투입됐다. 경찰은 과격 행동 분출 시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3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22 카타르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원정 월드컵 16강에 도전했던 한국은 이번 북중미 대회 조별리그에서 1승 2패(승점 3)에 그치며 A조 3위로 밀렸다. 조 3위 12팀 간 경쟁에서는 10위로 밀리면서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다. 참가국이 48개로 확대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최종 순위는 34위로, 순위로만 보면 월드컵 참가 역사상 가장 나쁜 성적이다.
지난 25일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 이후 멕시코 과달라하라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조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던 대표팀은 탈락이 확정되면서 쓸쓸한 귀국길에 올랐다. 한편, 주장 손흥민(LAFC)을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은 항공편 사정으로 추후 순차 입국할 예정이다. 손흥민은 SNS를 통해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다시 죽기 살기로 달려보겠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