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30일 달러-엔 환율은 장중 162엔까지 치솟아(엔화가치 하락) 1986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30일 미국 달러-엔 환율이 장중 162엔선을 뚫었다. 엔화가치가 39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기준금리 인상에도 강달러 앞에 '수퍼 엔저(엔화 약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엔화가치는 이날 오전 9시 50분 달러당 162.4엔까지 곤두박질쳤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직전 저점인 161.9엔(2024년 7월)이 무너지자 엔화 매도세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162엔선이 깨진 것은 1986년 12월 24일(162.57엔) 이후 처음이다. 당시는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 강세로 가는 길목이었다. 반면 지금은 엔화 약세 속도가 가팔라지는 국면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일본 정부의 환율 방어 노력은 아직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화가치가 달러당 160엔대로 밀려난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일본 정부가 11조 7300억엔(725억 달러)을 투입했다.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을 팔거나 활용해 확보한 달러로 엔화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가타야마 재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여기엔) 단호한 조치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개입성 발언 후에도 엔화가치는 여전히 달러당 162엔대에 머물렀다.
미국 달러 강세 압력이 일본 당국 방어를 압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증시 활황이 맞물리며 글로벌 자금이 달러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9일 101.36으로 한 달 새 2.2% 올랐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연 1%로 인상했지만, 미국 정책금리(연 3.5~3.75%)와의 격차는 최대 2.75%포인트에 이른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 환경이 지속 중인 셈이다.
일본 정부가 더 강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수퍼 엔저는 수출기업의 이익을 늘리지만, 가계에는 물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특히 수입물가 상승으로 식료품과 전기요금 등 생활 물가가 오르면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달러 강세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일본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엔화가치) 하락 속도를 조절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당분간 수퍼 엔저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엔화 약세가 더 빨라질 경우 엔화가치가 달러당 164~165엔까지 하락할 수 있으며,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퍼 엔저는 일본 엔화와 동조화 경향이 있는 한국 원화에도 부담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엔화 약세와 외국인 순매도 여파로 전 거래일보다 4.2원 오른(원화가치 하락) 1549.4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6일(1550원) 이후 가장 높다. 장중에는 1550원 선까지 치솟으며 외환시장 불안을 키웠다.
환율 방어 부담도 커지고 있다. 외환 당국은 1분기 시장 안정화 조치로 136억2800만 달러(약 21조원)를 순매도했다. 지난해 4분기 조치(224억6700만 달러)까지 합하면 반년새 360억9500만 달러(약 57조원)를 시장에 투입했지만, 원화 약세 압력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