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로 한 서남권에 삼성전자와 SK그룹, 앰코가 총 896조원을 투자한다.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팹 2기와 해남 솔라시도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포함해 총 425조원을, SK그룹은 반도체 팹 2기와 1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을 포함해 총 47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 패키징 업체 앰코는 1조원을 투자해 광주에 첨단 패키징 팹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차준홍 기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정부 부처와의 ‘서남권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구체적인 투자 일정과 위치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맞춰 용수와 전력 등 서남권(S.WEST) 맞춤형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반도체 팹에만 대형원전 4.5기 수준인 전력 6.3GW가 필요하고, 사용되는 물만 하루에 65만t에 달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많은 사람들이 인프라가 서남권에 있는지 질문을 하지만, 지구상 어느 곳에도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은 없다”며 “기업들이 투자를 결정한 이상 정부가 그 물음에 답을 할 차례”라고 말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전력은 안정적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 및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발전도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댐과 하수재이용수 등을 활용해 용수를 공급하고 팹 가동에 필요한 발전설비와 송전망도 신속히 구축하기로 했다. 산업단지 조성기간은 현재 절반 수준인 5년 이내로 단축하고, 남부권 반도체 공대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반도체 혁신지원단을 꾸려 인프라 지원 방안과 세부 투자 이행계획 등을 수립하고, 이 대통령이 위원장인 반도체 특별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동복댐 30만t, 보성강댐 10만t 등 서남권에 있는 댐을 통해 하루 총 65만t의 용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댐의 높이를 높이고(증고), 여유량을 최대한 활용해 확보한 양이다. 다만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댐의 여유량은 홍수 조절과 가뭄 대응을 위해 남겨두는 안전판 성격이 있다”며 “이를 모두 반도체 공장에 끌어다 쓰는 방식은 극한기후 상황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정을 추진하는 메가특구법에 따라 서남권에 최소 1개 이상의 메가특구를 지정해 각종 규제를 일거에 해소해준다. 기업과 근로자에 대해서는 지역별 차등 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취업자의 근로소득 세제 지원 제도의 감면율·감면 기간을 지역별로 차등화해 지역 근로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선 인공지능(AI) 수퍼사이클(초호황기)의 지속 가능성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투자은행(IB) UBS는 보고서를 통해 “2028년 상반기까지는 메모리 공급 부족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2029년부터는 완만한 다운턴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설비 구축 후 다운턴에 접어들 경우 1년에 수조원 이상 감가상각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2017~2018년의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이 잇따라 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며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글로벌 반도체 업체는 일제히 대규모 증설을 통해 생산량을 늘렸다. 하지만 2019년 D램 가격은 전년 대비 40%, 낸드플래시 가격은 60%까지 떨어졌고 메모리 업체는 다운사이클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