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제법 알려져 있다.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에 시인은 해를 끼치기 때문에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플라톤이 비판한 대상은 모방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그 위험성에 대한 지식을 일종의 해독제로 갖고 있지 않은 경우 모방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린다고 했다.
모방시는 우선 진리에서 멀어져 있다. 신이 만들어낸 형상(이데아)을 흉내 낸 장인의 제작물이 ‘모방’에 불과한데 제작물을 흉내 낸 화가의 그림이나 시인의 시는 ‘모방의 모방’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감정 절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끄러움 없는 분출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비극(모방시)을 감상하며 눈물을 흘릴 수는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슬픈 일이 닥칠 경우 눈물을 참는 게 바람직하다. 비극은 오히려 절제를 방해한다. 감정 분출에 대한 이성의 감시를 늦춘다는 것이다.
현대의 문화 현실은 플라톤의 문예론과는 딴판이다. 실감 나는 현실 모방이 대중의 아낌 없는 사랑을 받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사진)이 당장 눈앞의 사례다. 망가진 공교육을 자비 없는 폭력으로 바로잡는 설정이 안팎에서 의미심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는 물론 대만에서도 드라마에 자극받아 교사 권익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 논의가 일고 있다고 한다.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은 소설 『도가니』 이후 오랜만에 픽션이 현실을 움직이는 사례다.
동어반복 같지만 우리가 드라마 ‘참교육’에 열광하는 이유는 진짜 같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 참담한 교육 현장은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울분을 들춘다. 우리도 저런 교실을 겪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픽션)는 굳이 사실에 바탕하고 있지 않더라도 힘이 세다. 미국의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신경과학 등을 가미한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라고 했다. 사전 도상연습을 통해 인생의 어려움을 넘는 훈련을 픽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해 보이는 픽션이 그래서 진화론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이야기의 힘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