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겉으로는 공짜로 보여도 결국 누군가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공짜라고 무턱대고 좋아할 게 아니라 숨은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최근 서울에선 노인 공짜 버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24일 본회의를 열고 ‘서울시 어르신 교통비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서울에서 지하철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임승차 혜택을 주지만, 버스는 나이에 상관없이 요금을 내야 한다. 앞으로는 버스도 70세 이상에 한해 공짜 혜택을 주는 게 조례안의 골자다.
이번에 시의회에서 조례안을 처리하는 과정은 이례적인 ‘속도전’이었다. 평소 정치적 갈등이 심했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 사안에선 사이좋게 손을 잡았다.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달 9일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이 조례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15일 시의회 교통위원회는 공청회도 생략하고 만장일치 찬성으로 의결했다. 이어 시의회 본회의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조례안 발의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딱 보름이 걸렸다. ‘노인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공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넘어갔다. 오 시장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 조례안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이대로 조례안을 시행한다면 구체적으로 노인 1인당 언제부터 얼마나 혜택을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오 시장의 몫이다.
문제는 노인 공짜 버스의 비용을 누가 치르느냐는 것이다. 이때 비용 충당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다. 노인 무임승차로 생기는 손실을 일반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지난달 15일 시의회 교통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자. 이날 여장권 서울시 교통실장은 시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한 것도 한 번 실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래 서울시 내부적으로는 갈수록 커지는 버스·지하철 적자를 메우기 위해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노인 공짜 버스를 추가하면 요금 인상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서울 시민들의 세금으로 무임승차 손실을 메우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시는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버스회사 지원에 쏟아붓고 있다. 2004년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버스회사의 운송 적자를 서울시 재정으로 메워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연간 1000억원대였던 버스회사 지원액은 올해의 경우 4500억원에 이른다. 그렇게 하고도 버스 적자를 다 메우지 못해서 누적 부채가 1조원 넘게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공짜 버스는 서울시의 재정 부담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서울시의회 사무처 재정분석과는 앞으로 5년간 서울시 재정 소요액을 5800억원으로 내다봤다. 2031년 기준 서울시의 70세 이상 노인 인구를 162만 명으로 보고, 1인당 월평균 6회 정도 공짜 버스를 탈 것이라고 가정했다. 만일 노인들의 버스 탑승 횟수가 시의회 추산보다 많아진다면 서울시 재정 부담도 덩달아 불어나는 구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인구 비중 20% 이상)에 진입한 서울시에서 70세 이상 인구는 2050년대까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노인 공짜 버스를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미리 철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면 비용이 줄어드니 그만큼 버스도 노인 무임승차 혜택을 줄 수 있지 않냐는 주장을 편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사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혜택도 진작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어야 한다. 환자에 비유하면 이미 심각한 출혈로 긴급 수혈을 받아야 하는 응급 상황이다. 이때 기존 상처 부위에서 출혈을 다소 줄인다고 해서 다른 쪽에서 새로운 출혈 요인을 만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서울시는 뒤늦게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와 공동으로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런 공청회는 시의회의 조례안 의결 전에 해야 했다. 늦었지만 이번 공청회에선 누구보다도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한다. 행여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청년 세대를 들러리로 세우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한 번 도입한 복지 혜택은 웬만하면 수십 년, 어쩌면 영원히 갈 수도 있다. 결국 두고두고 그 값을 치르는 쪽은 청년 세대와 미래 세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