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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호남반도체의 가장 쉬운 단계, 발표는 끝났다

중앙일보

2026.06.30 08:18 2026.06.3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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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국장

고정애 중앙SUNDAY 국장

“숫자가 너무 커 낯설 것”이라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예고에도 숫자는 낯설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투자 공백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삼성·SK가 각각 발표한 게 450조원, 600조원이었다. 7개월 만인 29일 ‘4700조원’이 나왔다. 삼성만 보면 2655조원이다. 역대 최대란 올 투자 수준(110조원)을 24년간 지속하는 규모다. 과연 메모리 대란이다.

정부 “임기 내” 기업 “여건 돼야”
간격 줄이려면 원전 등 여권 변해야
정권서 흔들던 ‘용인’ 추진 다행
대통령이 굳이 “기업인들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며 문득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떠올랐다. 국회미래연구원의 2024년 ‘광주형 일자리는 어떻게 상생 없는 일자리가 되었나’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 노동계를 중심으로 2014년부터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게 2017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공약에 포함됐다. 하지만 차기 광주시장을 둘러싼 윤장현(당시 시장)-이용섭(후임 시장) 간 경선 와중에 동력을 잃었다. 윤 시장의 사업처럼 여겨져서다. 이게 지방선거를 앞두고 살아나는데 청와대가 선거 승리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엔 “청와대가 현대차 팔을 비틀어 광주형 일자리를 하게 했다”란 표현이 담겼다. 또한 “청와대가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현대차의 협상 전략에 이끌려 저임금의 무권리 일자리라도 광주시가 수용하길 바랐다”고 했다. 실제 현대차엔 이런저런 부가 혜택도 주어졌다. 4년간 표류하던 삼성동 신사옥 문제도 포함해서다. 보고서는 “(정부가) 현대를 끌어들여 현대가 원하는 것을 보장한” 모델이라고 했다.

당시엔 노사, 이번엔 입지·인센티브 문제이긴 하다. 규모의 차이도 상당하다. 하지만 정권 차원의 드라이브가 있고, 선거(당권 경쟁을 포함)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유사하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호남행을 꺼리는 두 기업에 인센티브를 안겼는데 가장 두드러진 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정권 차원의 용인에 대한 ‘사보타주’가 있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엔 전력이 없다’는 진단을 지키려고 지난달 용인에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 절차를 끊었다. ‘이미 늦었다’는 진단에 맞추려고 토지 보상률이 75%를 넘긴 지금도 옛날 40%대 숫자를 들고 온다. 핵심 협의체는 일곱 달째 닫아 두었다. 진행을 막아 놓고 진행이 안 된다 하고, 전기를 끊어 놓고 전기가 없다 한다.” 이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금 계획된 사이트들, 팹을 신속히 완료한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면 ‘호남 반도체’는 가능한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정부 안(2030년 6월)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4년이다. 업계의 시간표는 좀 다른 것 같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인사는 “전력과 용수, 정주 여건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엄청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광주전남의 생각 아닌가. 우리도 ‘포스트 용인’이 필요했는데 그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고 여건을 갖춰주면 내려갈 수도 있겠다고 한 거다.” 실제 삼성전자에서 29일 관련 공시를 40분 만에 정정하는 일이 있었는데 ‘향후 시장 상황 및 당사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이란 걸 추가했다. 정부는 용인·호남 병행인 듯한데, 기업은 용인부터인 듯하다. 정부는 직설법인데 기업은 가정법이기도 하다.

그 간격을 줄이는 건 여권의 의지와 실력, 그리고 운이다. 정부 관료 출신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은 그들이 마주할 숙제의 기초 중의 기초일 것이다. 첫째, 용수 공급을 위해 댐이나 보가 있어야 하는데, 4대강 사업을 반대해 왔던 민주당은 이제 태세를 전환할 것인가. 둘째,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전기는 결국 원전인데 호남의 반원전 카르텔을 설득할 수 있나. 셋째, 인재들이 정주할 수 있는 좋은 학교와 병원 계획은 세웠는가. 이제 민주당은 특목고와 민간 병원 유치에 나설 것인가. 모두 민주당의 영혼을 바꾸는 일이다. 또 반도체 사이클은 지속될 건가. 어쩌면 우리는 호남 반도체로 향하는 여정에서 가장 용이한 단계(발표)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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