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요양병원 면회가 막힌 사이, 아빠는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오랜만에 면회실에서 마주한 아빠는 바싹 쪼그라든 몸으로 앉아 있었다. 딸은 순간 울컥한 마음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꿈속에서만 맴돌던 말, 언젠가는 꼭 아빠의 눈을 보고 전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 아빠! 알지? 난 절대로 아빠를 버린 게 아니야. 너무 보고 싶었어. 매일매일 아빠 생각을 했어. "
눈물을 쏟는 딸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빠는 마른 입술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반짝 돌아온 정신으로 답했다. “딸, 나도 보고 싶었다.”
딸은 치밀어오는 슬픔을 간신히 눌렀다. 한번 눈물이 터지면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이런 불행은 왜 자신에게 일어난 건지, 답답한 마음이 터져 병원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할 것만 같았다. 그저 뼈만 남은 아빠의 다리를 쓸어내리는 것. 그 순간 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아빠! 다음 주에 또 올게. 아빠가 제일 좋아하던 고양이도 데리고 올게. 바이 바이! "
뒤돌아서는데 아빠가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딸에게 보내는 인사. 그게 마지막이었다. 딸은 다시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서른넷의 나이에 여든둘 치매 아빠를 책임져야 했던 김희연 작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간병의 후유증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는 김희연(39)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다. 치매에 걸린 아빠를 간병한 시간을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디멘시아북스)라는 책에 담아냈다. 그의 간병기는 ‘치매 부모를 극진히 보살핀 효녀’ 이야기도, ‘사랑으로 가득 찬 눈물겨운 가족 드라마’도 아니다. 서른넷 어린 나이에 80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딸이 매일 닥치는 불행 앞에서 흔들리며 버텨낸 생존기다.
또래들이 핫 플레이스에서 카페 투어를 할 때, 김 작가는 아빠를 모실 요양병원을 찾아 전국 투어를 다녔다. 친구들이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보낼 때, 김 작가는 엉망진창 간병의 한복판에서 병원비와 기저귀 값, 응급실과 치료 선택을 고민했다. 어둠의 터널 같았던 기나긴 간병의 시간은 아빠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하지만 그 터널의 끝엔 더 짙은 어둠뿐이었다. 김 작가는 공허함과 무기력,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통받았다.
김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해피엔딩이었다”고. 치매 아빠를 홀로 간병한 처절한 시간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준 건 무엇이었을까. 김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치매 부모를 간병하며 쉽게 무너지는 보호자. 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 치매 아빠와의 엉망진창 간병 이야기
Q : 책 제목에 ‘엉망진창’이란 단어를 쓰셨어요.
말 그대로 진짜 엉망진창이었거든요. 제 아버지는 굉장한 다혈질이라 기행을 많이 하셨어요. 옷을 홀딱 벗고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시기도 했고, 간호사에게 주먹질을 하신 적도 있어요. 막상 그 상황에 처하면 슬프기보단 그저 황당합니다. ‘이게 현실이 맞나’ 싶다니까요.
치매 부모를 돌보게 된 게 처음이다 보니,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능숙하진 못했어요. 그 시절은 정말 좌충우돌, 우왕좌왕, 우당탕탕이었어요. 그래서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다고 생각했죠. 눈물겨운 간병 서사는커녕, 하루하루 닥친 사건을 처리해 나가기에도 급급했거든요.
(계속)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김희연 작가에게 묻자 그는
“이 세상에 치매 아빠와 나, 그리고 기저귀만 있는 세상 같다”고 답했다.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지독한 소외감과 “왜 나여야만 했을까”라는 억울함으로 가득찬 시간.
김 작가는 긴 간병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 보호자에게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치매 아빠와 엉망진창으로 이별한 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을만큼 무너진 딸을 견디게 해준 한 가지,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