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등장과 함께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는 더 이상 부품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심화되면서 중국은 ‘탈 엔비디아’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AI 반도체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특정 AI 반도체에 집중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들도 있다.
중국 AI 반도체의 선구자인 캠브리콘(Cambricon, 寒武纪), 자율주행용 AI 칩을 만드는 호라이즌(地平线,Horizon), 생성형 AI용 GPU 시장에 뛰어든 엔플레임(燧原科技, Enflame)은 중국 AI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 이들 중국 AI 반도체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 및 핵심 경쟁력을 3주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그 두 번째 주자는 호라이즌이다. "
미중 제재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중국판 엔비디아’를 외칠 때 오직 자율주행 AI 칩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업체가 있다. ‘세계 최강 칩’보다는 ‘실제 양산 가능한 자동차용 칩’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그 결과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반도체 오린(Orin)의 대체재로 급부상했다. 중국 로컬 OEM들의 선택을 받으며 중국 스마트카 생태계의 중심에 섰다. ‘중국 자율주행 공급망 국산화’의 핵심 수혜 기업으로 평가되는 호라이즌(地平线机器人, Horizon Robotics)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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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 자율주행 리더 출신 CEO의 선택과 집중
호라이즌은 지난 2015년 바이두(百度) 출신 창립자 겸 CEO 위카이(余凯)의 손에서 탄생했다. 바이두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직접 런칭하기도 했던 그는 AI 알고리즘 외에 AI 칩과 인프라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바이두가 자율주행차 로드 테스트를 막 시작하려던 시점에 회사를 나와 호라이즌을 창업했다. AI 붐이 일기 전, 위카이는 “AI의 시대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겠다”며 회사이름을 ‘호라이즌’으로 정했다.
AI 업계에서 남들이 AI 알고리즘에 집중할 때, 호라이즌은 칩과 소프트웨어는 물론 차량 플랫폼까지 함께 만드는 풀스택 AI 회사를 지향했다. 자율주행 업계에서 남들이 완전자율주행에 집중할 때, 호라이즌은 보조주행과 자동차용 AI 칩의 가능성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 범위를 좁히고 그 분야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를 향해 내달린 끝에 호라이즌은 실제 양산 및 공급에 성공했다. 그렇게 엔비디아 오린의 대체재로서 각광받으며 중국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자동차 AI 반도체 회사로 떠올랐다. 앞서 언급했듯 단순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칩과 운영 플랫폼, 자율주행 알고리즘까지 모두 포괄하는 통합 전략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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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투자자와 협업 라인업, 홍콩 증시 최대 IPO
호라이즌은 초기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주목받았다. 특히 인텔(Intel)은 일찌감치 호라이즌의 가능성을 알아본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7년 10월 인텔은 호라이즌 시리즈 A+ 라운드에서 투자를 주도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이 중국 AI 반도체 유망주를 일찍 점찍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모빌아이(Mobileye)를 인수하고 자율주행 사업을 강화하려는 인텔의 니즈와 호라이즌의 방향성이 맞아떨어졌다.
화려한 협업 라인업도 호라이즌이 자랑할 만한 점이다. 중국 로컬 업체 중에서는 BYD, 체리자동차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BYD는 호라이즌 칩을 채택한 대표 OEM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시장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BYD와의 협업은 곧 양산성과 가격 경쟁력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체리자동차(Chery)는 전략적 투자와 차량 양산 협력을 모두 진행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과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22년 폭스바겐은 호라이즌과 자율주행 합작사 카리존(CARIZON)를 만들며 큰 화제를 모았다. 폭스바겐과의 협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단순 공급 계약이 아니라 공동 개발 및 중국 전용 자율주행 플랫폼을 위한 협업이어서다. 폭스바겐이 호라이즌을 중국 자율주행 시장 핵심 파트너로 선택한 셈이다.
호라이즌은 지난 2024년 홍콩 증시를 뜨겁게 달궜다. 그해 홍콩 최대 IPO로 주목받았다. 약 6억 9600만 달러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침체됐던 홍콩 IPO 시장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기점이 됐다. 호라이즌의 성공적인 IPO는 중국 AI 반도체 및 자율주행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보여주었고, 홍콩 기술주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졌다.
물론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엔비디아와의 성능 격차, 중국 국내에서는 화웨이와의 경쟁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기존 OEM들의 자체 칩 개발도 호라이즌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완전 자체 개발이 어려운 OEM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업계 특성상 양산 전까지 적자가 지속되는 구조에서 수익성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된다. 무엇보다 중국 자율주행 시장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기술 진화 속도를 계속해서 따라갈 수 있는지도 장기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로 꼽힌다.
현재 호라이즌은 ‘중국 로컬 자율주행 반도체 회사’에서 ‘완성형 스마트 드라이빙 플랫폼 회사’로 도약하는 단계에 있다. 이를 위해 2025년 폭스바겐과의 협력을 더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호라이즌의 기술을 폭스바겐 중국 모델에 적용하고, 합작사 카리존을 통해 공동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호라이즌 기술이 들어간 폭스바겐 차량이 2026년부터 양산 예정이라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기술 시연을 넘어 실제 차량 판매 적용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해서다. 2025년 9월에는 독일 자동차 박람회 IAA Mobility 2025에서 유럽 본부를 설립하고 글로벌 OEM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내수 전용에서 머물지 않고 글로벌 공급업체 포지션을 노린다는 의미다.
2026년에는 차세대 AI 반도체 Journey 7을 개발 중이라고 알렸다. 오는 2027년 양산과 더불어 현재 자동차 AI 시대의 차세대 두뇌를 상징하는 엔비디아 Thor-X 및 테슬라 AI5와 직접 경쟁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점에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중국 AI 칩 회사들이 ‘엔비디아의 대체재’라는 포지션이었다면, 호라이즌이 이제 ‘정면 승부’의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글로벌 자동차 부품 회사 보쉬(Bosch) 등과의 협력 강화도 발표했다. 이처럼 호라이즌은 단순 자율주행 AI 반도체 회사에서 한층 더 진화해 풀스택 스마트 드라이빙 플랫폼 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