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이가 썩는다는 것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막상 치과 의자에 앉아 “충치가 있으니 치료하셔야 합니다”라는 진단을 받으면 덜컥 의문이 들곤 한다. 당장 아무런 통증도 없고 음식을 씹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는데, 굳이 멀쩡해 보이는 치아를 깎아내야 하는지 속으로 의심 섞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의학 용어로 ‘치아우식증’이라 부르는 충치는 입안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와 박테리아가 만나 생기는 산성 물질 때문에 치아가 부식되는 질환이다.
충치의 첫 번째 단계는 치아의 가장 바깥쪽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법랑질’이 썩는 시기다. 이 부위에는 신경이 전혀 없기 때문에 환자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미세한 검은 점이나 선, 혹은 약간 둔탁한 하얀색 반점으로 보일 뿐이다. 양치질을 꼼꼼히 하고 불소를 도포해 주면 치아가 스스로 회복하는 ‘재광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때는 치료 대신 3~6개월 주기로 치과에 방문해 충치가 더 커지지 않는지 지켜보는 ‘정기 관찰’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충치가 법랑질을 뚫고 내부의 ‘상아질’까지 파고드는 두 번째 단계부터이다. 상아질은 미세한 관들을 통해 치아 중심부의 신경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때부터 비로소 자극을 느끼기 시작한다. 찬물을 마실 때 이가 시리거나, 초콜릿처럼 단 음식을 먹을 때 찌릿한 통증이 밀려온다면 충치가 이미 상아질까지 진행되었다는 신호이다. 이때부터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상아질은 법랑질보다 무르기 때문에 방치하면 썩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더 큰 손상을 막기 위해 썩은 부위를 깨끗이 긁어내고 레진이나 인레이로 채워 넣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만약 이 신호를 무시하면 충치는 치아 중심부에서 신경과 혈관이 지나가는 ‘치수’ 공간을 침범하며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는 ‘치수염’ 단계다. 가만히 있어도 치아가 욱신거리고, 찬물보다는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통증이 더 심해진다. 이 단계는 자연 치아를 살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감염된 신경을 모두 제거하고 소독하는 ‘신경치료’를 진행한 뒤, 약해진 치아가 깨지지 않도록 왕관처럼 전체를 씌우는 크라운 치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간혹 극심한 통증이 며칠 지속되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신경이 완전히 괴사하여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마지막 네 번째 단계다.
통증이 멈춘 사이 세균은 뿌리 끝까지 내려가 고름 주머니를 만들고 잇몸 뼈를 녹이기 시작한다. 결국 치아가 흔들리고 나서야 다시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때는 신경치료로도 치아를 살릴 수 없어 결국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치아우식증은 감기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되는 질환이 아니다. 통증이 느껴져 치과 문을 두드렸을 때는 이미 치료 비용과 통증, 그리고 치료에 필요한 시간까지 몇 배로 커진 상태인 경우가 많다. 가장 아프지 않고 가장 경제적으로 치아를 지키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기 전에 치과에 가는 것이다. 최소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구강 검진과 스케일링은 충치를 아무런 통증이 없는 1단계에서 발견해 자연 치아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당장 치아에 통증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치과를 찾는 작은 습관이 평생 소중한 미소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