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오랜만에 아들 집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주들이 반갑게 달려왔다. 거실에 들어섰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글씨였다. ‘Happy Birthday’.
생일파티 때 사용하는 흔한 장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번 달은 손주들도, 아들 내외도 생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일이 지난 후 미처 떼지 못했나 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거 왜 아직도 안 떼었니?”
아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 우리는 그냥 계속 붙여 놓기로 했어요.” “계속?” “네. 우리 네 식구가 서로의 생일을 일 년 내내 축하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뜻이에요. 그래서 떼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화려한 액자도, 값비싼 예술품도 아닌 종이 장식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것 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생각해 보니 생일이란 참 이상한 날이다. 일 년에 하루만 특별한 날로 정해 놓고 축하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매일이 사실은 축하받을 만한 날이 아닐까.
‘Happy Birthday’라는 이 말은 그저 하루를 즐겁게 보내라는 가벼운 인사가 아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자 위로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다정한 긍정이라고 본다. 우리가 매년 무심코 주고받는 축하 속에는 “당신이 우리 곁에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라는 고백이 숨어 있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태어남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특별한 날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에는 값비싼 장식품도 아름다운 그림도 많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물건의 가격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이라는 것을 그날 다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