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의 주가가 비싼지, 아니면 저평가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 지표다. 이를 토대로 보면 현재 몇몇 기업의 주가는 비싸다는 경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지표를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을 측정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치 평가 지표 가운데 주가수익비율(P/E)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이다. 계산은 간단하지만 어떤 이익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트레일링(Trailing) P/E는 지난 12개월 동안의 기업 실적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과거 실적이 바탕이라 객관적이며 애널리스트들의 낙관적인 전망이 개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실적 악화 등 일시적 변수가 발생하면 현재 실적은 좋더라도 P/E가 높게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반면 포워드(Forward) P/E는 향후 12개월의 예상 이익을 사용한다. 투자자는 미래의 이익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더 의미 있는 지표다. 하지만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포워드 P/E는 주가를 실제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현재 S&P500 기업들의 트레일링 P/E는 약 27~28배이며, 포워드 P/E는 약 21배 수준이다. 두 지표의 차이는 약 7포인트나 된다. 시장은 기업 이익의 증가를 기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익 증가가 현실화된다면 현재 주가는 합리적이지만, 만약 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현 주가는 포워드 P/E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한 산점도(Scatter plot·분산형 차트)도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S&P500의 트레일링 P/E와 투자자가 약 10.7년 동안 거둔 연평균 수익률을 비교해 보면 매수 당시 P/E가 높을수록 수익률은 낮았다.
트레일링 P/E가 7~10배일 때 투자한 경우 10년 동안 연평균 16~19%의 높은 수익률을 거둔 사례가 많았다. 반면 현재처럼 약 28배 수준에서 투자한다면 자료 분석 결과 향후 연평균 수익률은 약 3%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률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P/E는 단기 시장을 예측하는 도구는 아니다.P/E는 1~3년 사이 수익률과의 상관관계는 매우 약하지만, 투자 기간이 10~11년으로 길어지면 예측력이 크게 높아진다. 다시 말해 P/E는 단기 매매를 위한 지표가 아니라 장기 투자자를 위한 나침반이다.
트레일링 P/E가 현 시장 상황에 대해 경계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CAPE 지표(경기조정 P/E)는 더욱 강한 경고를 하고 있다.
CAPE는 현재의 S&P500 지수를 지난 10년간의 물가조정 평균 순이익으로 나눠 계산한다. 이 지수는 경기 침체와 호황, 일시적 이익 변동 등을 모두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 상황을 보여준다.
현재 실러 CAPE는 약 41배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장기간의 평균치 두 배를 훨씬 웃돈다. 이는 140여 년 미국 증시 역사상 1999년 12월 닷컴 버블 당시 기록한 44.19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당시 S&P500은 약 2년 반 동안 거의 절반 가까이 급락했다.
앞의 분석은 투자자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밸류에이션 지표는 단기간의 고점이나 저점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CAPE는 2018~2025년 사이 25배를 웃돌았지만, 미국 증시는 상당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고평가된 시장도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 지표들이 말해주는 것은 다음 달 시장이 아니라 10년 후의 기대수익률이다.
둘째, 수익률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트레일링 P/E, 포워드 P/E, 그리고 실러 CAPE 모두 향후 10년 동안 미국 증시의 수익률이 역사적 평균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CAPE가 암시하는 미래의 실질 연평균 수익률은 약 1.7%에 불과하다.
셋째, 미국 대형주에 집중하기보다 해외 시장으로 분산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형주의 가격이 높은 수준인 만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해외 시장이 더 나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주식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불리한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인공지능(AI)활용으로 인한 기업 이익 증가, 견조한 소비, 금리 인하 가능성 등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140년에 걸친 증시의 역사적 데이터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은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면 장기 수익률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평가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현재의 미국 증시는 고평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