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체감사에서 1800건 가까운 지적 사항이 발견됐지만, 공무원 징계는 1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상 독립 기관이라 외부 감시가 사실상 막혀있는 상황에서 자체 감사를 통한 자정작용도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의 자체 감사 결과 보고서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일 국회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선관위 감사관실로부터 제출받은 ‘2025년도 정기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 6월~10월 9개 시·도 선관위와 127개 시·군·구 선관위를 대상으로 2023년 1월 1일 이후 실시한 각종 선거관리 업무에 대해 정기감사를 한 결과 1796건의 지적 사항을 적발했다. 지적 사항 가운데 1669건(92.9%)은 현지시정으로 종결했고 경고·주의 처분은 각각 6건, 43건으로 나타났다. 징계 처분은 1건도 없었다.
1일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왼쪽)과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인 위철환 상임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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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 납품 투표용지 300매, 기록 없이 자체 폐기
지난 지방선거에서 논란이 됐던 투표용지 부실 관리 문제는 이전 선거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 화천군선관위는 2024년 제22대 총선 당시 투표용지가 부족할 때 쓰이는 무번호 투표용지를 1000매 계약해놓고 납품받을 때는 1300매를 수령했다. 선관위 감사관실은 “초과 납품된 300매를 투표용지 작성·관리록에 기록 없이 자체 폐기”했다고 지적하며 해당 선관위에 주의 처분을 내렸다. 경남 하동군선관위는 지난해 제21대 대선에서 무번호 투표용지 403매를 사용하면서 내부 결재를 누락했고, 투표용지 작성·관리록엔 “400매”라고 잘못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당일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가 잇달아 벌어졌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서울 종로·중구선관위는 제22대 총선 당일 투표용지 촬영행위를 적발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감사관실로부터 각각 주의 처분을 받았다. 감사관실은 서울 서초구선관위에 대해 “투표지 훼손(3건), 투표지 촬영(1건)에 대해 적절한 조사·조치 미실시”라고 지적하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 외에도 부산 서·남구, 인천 계양구, 울산 동·중구, 충남 청양군, 제주 서귀포시 등에서 선거 당일 발생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중앙선관위 정기감사 보고서에 나타난 강원도 화천군선관위의 투표용지 관리 부실에 관한 지적 사항. 사진 박수민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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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부담할 보험료, 국고 예산으로 지급
예산 집행 등 회계처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전 서구선관위는 제22대 총선 당시 개표사무원 수당 1억8428만원을 규정에 따라 각 사무원 명의 계좌로 직접 이체하지 않고, 별도 현금 계좌에 입금해 보관하다가 한 번에 지급해 감사관실로부터 경고·주의 처분을 받았다. 경북 울릉군선관위는 관사 입주자 개인이 부담해야 할 화재보험료 20만4000원을 국고 예산으로 지급한 것이 적발돼 회수 조치가 이뤄졌다. 각 지역 선관위가 업무추진비·특근매식비·직책수행경비 등 각종 비용을 규정과 다르게 초과 지급했다가 적발된 건 총 78건 797만원에 달한다.
선관위가 외부 업체 등과 맺은 계약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관실은 대전 중구선관위가 “22대 총선 차량 임차 계약 시 추정가격이 2000만원을 초과(2343만원)함에도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한 2인 이상 견적서를 제출받지 않고, 1인 견적서만 제출받아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도봉구선관위는 제22대 총선과 제21대 대선에서 각각 2574만원 상당의 개표소 임차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지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경비를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서·구로구 선관위는 각각 1629만원, 1430만원 상당의 투표소 안내 현수막 제작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1800건에 가까운 선거행정 부실이 적발됐음에도 단 한 건의 징계조차 없었다는 것은 선관위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라며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셀프감사를 멈추고, 실효성 있는 외부 통제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