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전,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창조주는 이들에게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부여했다”는 건국 이념이 선포됐다. 미국은 이 신조 위에 세워졌다.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으로 출발한 미국이 올해로 건국 250주년을 맞았다. ‘기회의 땅’ ‘민주주의의 실험실’ ‘세계 최강국’ 등의 수식어와 함께 미국은 인류 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250년간 쌓아온 영광의 역사 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갈등과 모순, 그리고 미래를 향한 무거운 질문들이 산적해 있다.
고질적인 인종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있으며, 이민 정책은 경제적 필요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새로운 소용돌이를 지나고 있다.
정치권의 진영 대립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으며, 정치적 양극화는 날로 심화하는 양상이다.
건국 250주년을 맞은 지금, 미국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자유의 가치를 태동시켰던 건국 이념을 거울삼아 오늘날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다가올 250년을 준비하기 위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지는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사회를 관통하는 세 가지 핵심 질문을 던지는 특별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지난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확산한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조명한다.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 문제의 실태와, 이 이슈가 시대적 기조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미니애폴리스 현장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짚어본다.
두 번째로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그려온 ‘아메리칸드림’의 현주소와 그 변화의 궤적을 추적했다. 최근 미국은 이민자 기반의 국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점차 이민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이민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정작 이민자들이 발붙일 곳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민자가 꿈꾸는 사회와 미국 사회가 수용하려는 이민의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간극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정치 양극화 문제를 다룬다. 민주·공화 양당을 중심으로 심화하는 진영 대립이 오늘날 미국 사회의 근간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분석한다.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다. 이 같은 정치적 분열은 지역사회와 가정을 넘어, 다문화주의를 뿌리로 하는 미국 사회의 근간마저 위협하고 있다.
본지는 오는 7월 4일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총 3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통해 미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짚어보고,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며 미래를 향한 과제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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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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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거둔 현장엔 추모의 발길 관광하는듯 찾아오는사람도…지역 분위기는 여전히 침체 흑백갈등 이슈, 점차 퇴조…인종갈등만으론 설명 못해
(1) 지난달 26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에 추모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38가와 시카고 애비뉴 교차로.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가 경관의 무릎에 깔려 숨진 곳이다. 이제 이곳은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로 불린다.
교차로 한가운데에는 저항을 상징하는 불끈 쥔 주먹 조형물이 서 있다. 인근 건물 외벽과 도로에는 ‘BLM’, ‘자유’, ‘경찰은 나가라’, ‘우리(We)’ 등 연대와 저항을 뜻하는 문구가 남아 있다. 플로이드가 숨진 자리에는 꽃과 인형, 그림, 편지가 놓여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의 ‘런 투 유(Run To You)’가 흘러나왔다.
추모와 저항의 상징물들 사이로는 방치와 쇠락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맞은편의 버스 정류장은 노숙자들이 차지했고, 인근 식당과 카페는 영업 중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적막했다.
인근 주민 DJ 윌리엄스는 “플로이드가 사망한 뒤 첫 1~2년은 외지인들이 정말 많이 찾아왔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동네 주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뒤에도 제2, 제3의 조지 플로이드가 계속 나왔고, 그래서 이 사건도 사람들 기억에서 잊힌 것 같다”고 했다.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며 플로이드를 신고했던 식료품점 유니티 푸즈(옛 컵푸즈)의 한 직원은 “이 지역 상권은 플로이드의 죽음과 함께 멈췄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 주인이 약 8개월 전 바뀌었는데, 이전 주인은 장사가 도저히 되지 않는다며 떠났다”고 전했다.
(2) 본지가 사건 직후인 지난 2020년 6월 플로이드가 숨진 식료품점 앞을 찾았을 당시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인 27일, 주말이 되자 외지인들의 발길이 조금씩 이어졌다. 그들 사이에서 흑인 남성 마르퀴스 보위가 열심히 설명을 이어갔다. 스퀘어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그는 이곳을 지키고 유지한 주체가 시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이 추모지가 아닌 관광지처럼 소비되는 현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꽃을 들고 오는 사람보다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미니애폴리스시는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교차로와 주변 약 0.5마일 구간의 도로·보도·조명·녹지·자전거도로·대중교통 기반시설을 재정비하는 공사는 지난달 초 시작돼 2027년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문제는 무엇을 우선하고, 누가 그 우선순위를 정하느냐다. 시가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서 제시한 10개 개선 과제에는 보행 환경, 대중교통, 자전거 도로 등이 포함됐다. 플로이드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 공간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논란이 과연 인종 갈등의 본질이냐에 대해선 회의론도 있다. 추모와 정비 사업이 미국 사회가 약속했던 변화의 완성이냐는 질문엔 답이 궁해진다. 로즈 브루어 미네소타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추모 공간의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경찰을 어떻게 바꾸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와 기대가 얼마나 실현됐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했다.
기억은 남았지만, 그 기억이 요구했던 구조적 변화는 아직 미완이라는 뜻이다. 플로이드 살해 사건 이후 전국적 폭동이 지나간 뒤, 지금은 이민과 국경 문제에 밀려 우선순위가 뒤쳐진 분위기다. 특히 건국 25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인종 문제는 의외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 주변의 식어버린 분위기가 그걸 말해준다.
(3) 미니애폴리스경찰국 소속 데릭 쇼빈 경관이 무릎으로 플로이드를 누르고 있다. 장열·김경준 기자, [로이터]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백인 우월주의가 거세게 부상한다고 하지만, 사회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조직적 세력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흑인 유권자 득표율도 점점 상승했다. 그가 처음 대선에 나선 2016년엔 득표율이 8%였으나 2024년엔 10%대 중반(출구조사 13%, 사후조사 15%)으로 상승했다. 흑백 갈등의 내러티브와는 잘 안 맞는 결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 내러티브는 통계와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2016년엔 하버드대의 최연소 흑인 종신교수였던 롤랜드 프라이어가 경찰 데이터를 통해 “경찰 총격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이 표적이 된다는 통계적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인종차별 담론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프라이어는 같은 흑인 사회의 따돌림을 받고 학계활동을 일시 중단해야 했다.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 BLM 지도부는 기부금 돈벼락을 맞고 여느 자본가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다 사법 리스크 앞에 서 있다.
구조적 차별에 신음하는 흑인이라는 인종 서사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지만, 현실에선 플로이드 사건 같은 대형 이슈의 공급이 부족해졌다. 민권 옹호단체인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소멸 국면에 접어든 백인우월주의 혐오집단인 쿠클럭스클랜(KKK)에게 300만 달러를 지원해준 혐의로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게 상징적이다. 차별 이슈의 수급 불균형이 빚은 역설이라고나 할까.
흑백 갈등이라는 오래된 서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건국 250년의 미국은 더 이상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설명되는 나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