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현지시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세계은행(WB)이 중국에 대한 개발 차관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종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을 더 이상 개발 금융 지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로 분석된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세계은행 이사회 논의 계획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대중국 개발 차관을 2031년까지 총 20억 달러(약 2조7200억원)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제한하고, 이후에는 종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관련,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오는 7월 2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다만 공식적인 투표는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해당 계획은 세계은행과 중국이 향후 5년 간의 협력 방향을 담아 이미 합의한 국가협력체계 프레임워크(CPF)의 일환이다. 세계은행은 이미 대중국 대출 규모를 2017년 24억달러(약 3조2640억원)에서 2025년 7억5000만달러(약 1조200억원)로 점차적으로 줄여오고 있었다.
세계은행 관계자는 FT에 “우리는 중국의 발전 과정을 인정한다”며 “중국은 이제 세계은행과 같은 개발금융기관의 자금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아도 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레임워크 종료와 함께 중국은 졸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의 대상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중국이 세계은행의 개발 차관을 받을 단계를 지났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파키스탄 카라치의 국제금융공사(IFC) 사무실에 전시된 세계은행(WB)의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세계은행은 산하 기관인 국제개발협회(IDA)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을 통해 개발차관을 제공한다. IDA는 최빈국을 위한 초저리·무이자 개발 차관을, IBRD는 중소득국이나 신용도가 있는 개도국을 위한 개발 차관을 제공한다. 중국은 2000년경 IDA 지원 대상에서 졸업했고, 이후에는 IBRD를 통해 환경, 기후변화, 농촌 개발, 보건의료 등 개발 사업 자금을 지원받아왔다.
세계은행은 1인당 국민소득(GNI)에 따라 국가를 분류한다. 중국은 세계은행이 산출하는 1인당 GNI 기준으로는 아직 ‘고소득국’ 기준에 조금 못 미친다. 세계은행 기준으로 고소득국의 1인당 GNI는 1만3935달러(약 1890만원)로, 중국의 경우 1만3660달러(약 1850만원)였다. 다만 지난해 중국 국가통계국(NBS)이 산출한 자료에서는 중국의 1인당 GNI가 약 9만9109위안(약 1만4503달러·약 226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건물. AFP=연합뉴스
이번 조치는 중국의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오랜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다. 2017년부터는 세계 최대 공적 채권국으로도 올라섰다. 미 윌리엄앤메리대 연구에 따르면 중국이 정부와 국책은행 등을 통해 신흥국 정부에 제공한 대출 잔액은 최대 1조5000억달러(약 2030조원)에 달한다. 미국은 그간 이 같은 부분을 감안하면 중국이 세계은행의 개발 차관을 계속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중국 개도국 지위도 문제 삼아왔다. WTO에서 개도국은 무역협정 이행 기간 연장과 기술 지원, 일부 규정의 예외 적용 등 특별·차등대우(SDT)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로이터에 따르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더 높은 관세나 보조금을 운용할 수 있는 재량도 인정된다.
중국은 지역 간 발전 격차와 낮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등을 이유로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다만 지난해 9월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되 앞으로의 WTO 협상에서는 개도국 특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FT에 “세계은행그룹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중단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치”라며 “다른 국제개발금융기관들도 세계은행을 따라 중국에 대한 대출을 축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이달 초 폴란드에 대해서도 중국과 유사한 전환 계획을 승인했다. 폴란드에 대한 개발 차관도 2031년까지 점진적으로 줄였다가 이후 종료할 예정이다. 다만 폴란드 계획에는 우크라이나 지원 프로그램과 원자력 에너지 관련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예외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포함됐다. 중국은 이 예외 규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