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요청으로 진행된다”고 했던 카타르 도하에서의 30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의 2차 고위급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은 지난 17일 미국이 종전을 위해 체결했던 양해각서(MOU)에서 합의한 사안에 대한 선제적 이행을 요구하며 “미국의 합의 이행을 평가해 본협상 개시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고압적인 태도로 미국을 압박했다.
━
중동까지 날아갔지만…이란 고위급 없었다
이란 테헤란의 발리아스르 광장에서 한 여성이 이란 국기를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지드 빈 모하메드 알안사리 카타르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재러드 쿠슈너가 도하를 방문해 카타르 측 중재자와 만날 예정”이라며 “이들의 방문 기간 중 미국과 이란 간의 고위급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로서 이란의 고위급 인사의 도하 방문은 예정돼 있지 않다”며 “고위급 회담은 실무 협의가 성과를 거둘 경우에만 성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이 도하에서의 2차 회담ㄹ을 요청했다고 트루스소셜에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측만 고위급 인사를 보내 당사자인 이란이 아닌 중재국을 통한 간접 협상만 진행한 채 끝날 가능성이 생겼다. AFP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 당국자들은 도하에서 카타르 및 파키스탄 중재자들과 간접 실무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소식통은 “쿠슈너와 윗코프가 전날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와 면담했으나 이번 실무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이란 비핵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아주 좋은 회담을 했고 우리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
“패배 증명 문서…조건 충족 때까지 협상 없다”
반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이날 대국민 TV대담을 통해 미국이 합의한 양해각서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증명하는 문서”라며 “양해각서의 조건들이 충족될 때까지 추가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고 있는 상선.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호르무즈해협의 ‘완전한 무료 통항’에 대해서도 “양해각서에 따르면 해협의 무상 통항은 오직 (본협상 기간인) 60일 동안만 허용된다”며 “이는 전쟁 당시 해협 봉쇄로 인해 해당 지역에 갇혀 있던 선박들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영해인만큼 이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협에 대한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이 끝난 뒤 실제로 통행료를 부과할 뜻을 분명히 했다.
━
“오만, 호르무즈 통행료 징수 동참”
이란의 강경한 입장이 확인되자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부과 구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오만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행료 부과 방침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외교 소식통과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오만이 최근 미국과 서방국들에 호르무즈해협 이용 선박이 서비스료를 내는 방안을 담은 공식 제안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해협 관리와 관련 “의심할 여지 없이 비용이 든다”며 통행료 부과 방침을 밝힌 이란에 동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오만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도, 오만이 공동 관리 체계 구축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란은 독자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오만이 통행료 징수 방침에 동참할 것을 촉구해왔다.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MOU는 협상이 진행되는 60일 동안만 호르무즈에서 상선의 안전한 무료 통항을 보장하고 있다. 이후 운영 방안은 이란과 오만이 협의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
원유 수출 허용 이어 동결자산까지?
이란은 미국이 이미 시행한 원유에 대한 제재 해제에 이어 동결자금 해제 조치를 본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제 조건으로 제시하는 등 협상 개시를 위한 요구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과는 어떤 수준의 회담도 가질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취소할 회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내일(1일) 카타르 측과 만나 동결자산 해제와 관련한 조항을 포함해 양해각서의 이행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양해각서 제1, 4, 5, 10, 11조의 이행이 시작되고 지속되어야 한다”며 “향후 며칠 동안 이 조항들의 진행 상황을 평가해 협상을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조는 미국이 MOU 이행과 함께 동결자산 해제를 약속하는 내용이 담겼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특히 미국이 동의한 이란 동결자금과 관련해 “현재까지 60억 달러 규모의 동결 해제된 이란 자금은 이란 측으로 송금되지 않았다”며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동결자금 관련 논란이 확대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해제는 이란의 핵협상 이행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며 해제된 자금에 대해서도 “미국산 농산물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기로 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란은 동결자산의 용처를 제한하겠다는 구상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