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힐튼호텔에서 열린 ‘신앙과 자유 연합’ 행사에서 연설 도중 손가락으로 청중석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이민 정책 등 핵심 국정 어젠다가 연방대법원에서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두 달 앞둔 ‘9월 공화당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을 제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수정헌법 14조는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월 연방대법원이 전 세계 교역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단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정책에 제동을 건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국경장벽 강화와 불법 이민 차단을 골자로 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일환으로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날 위헌 판단을 내리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는 강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의회 입법으로 반(反)이민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에 큰 불행”이라며 “의회는 돈이 많이 들고 불공정한 출생 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오늘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이날 미 법무부가 연방 검찰에 내린 지시로도 확인됐다. 법무부는 대법원의 위헌 결정이 나온 지 수 시간 만에 원정 출산 사건들을 최우선으로 수사해 기소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대법원의 결정과 관계없이 출생시민권을 목적으로 미국에 들어와 출산하는 일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에 대해서도 위법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관세 정책, 이민 정책이 잇따라 사법부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특히 보수 6명, 진보 3명 등 보수 우위 성향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에 연이어 제동을 걸면서 사법부가 반드시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전날에도 선거일 이후 도착하는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는 미시시피주 등의 선거 제도에 대해 합법 판결을 내렸다. 우편투표 확대는 통상 민주당에 유리한 제도로 평가되는 만큼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며 우편투표 제한을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
사법부의 이 같은 판결과 맞물려 공화당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 법안(유권자 ID법)을 둘러싸고 당내 이견이 불거졌고, 이 여파로 이날 예정됐던 국방수권법안(NDAA) 처리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은 연방선거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당 결속에 직접 나섰다. 그는 오는 9월 공화당 전당대회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이 아닌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공화당이 사상 처음으로 ‘중간선거 전당대회’를 연다”며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위대한 미국의 부활’과 ‘미국 우선 정책’을 통해 미국을 변화시킨 미 국민들의 놀라운 성과를 축하할 것”이라고 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사실상의 출정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성과를 부각하는 동시에 당내 분열을 봉합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무대를 계획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연방대법원은 정당이 후보자 지원을 위해 사용하는 선거자금의 지출 한도를 폐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정당도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처럼 후보자 지원을 위한 자금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수 있게 됐는데, 통상 선거 모금액 규모 면에서 민주당보다 앞선 공화당에 유리한 판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