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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서정주에 대한 감회

중앙일보

2026.07.01 08:02 2026.07.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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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내 고향은 아니지만 고창·부안·정읍은 언제 가도 푸근하다. 젊었을 적에 나는 호남을 여행할 길이 있으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백파선사비(白坡禪師碑)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현판 정와(靜窩)를 보러 고창 선운사(禪雲寺)를 찾아갔다. 그리고 절 뒷산에 있는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별장과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의 시비(詩碑)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얼마 전 고창에 내려갈 기회가 있어 선운사에 들렸다. 일주문을 들어서기에 앞서 미당의 육필 시비 ‘선운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미당의 시비도 없어지고 인촌의 별장도 없어졌다. 인촌의 별장이 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당의 시가 없어져 혹시 다른 곳으로 옮겼나 싶어 관리실에 그 행방을 물어보았더니, 파내어 부숴버렸다고 대답했다. “왜요?” “친일파의 고향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나는 자지러지듯 놀랐다. 그리고 마녀사냥처럼 전개되는 생계형 항일 세력의 행태 앞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김성수 집안의 마름의 아들이었던 그는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들어갔고, 일제시대에 그가 친일을 했다는 것은 이제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자화상’과 같은 명작들은 어찌 되나? 그것도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대상인가? 친일 시만 묻으면 안 되나?

나는 지금 이와 같은 논리가 토착왜구론자들 앞에 얼마나 위험하게 노출되는가를 많이 겪어봐서 잘 안다. 그러나 광복 8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조금 너그러워지면 안 될까? 그때를 살아보지 않은 삶, 먼저 태어난 사람의 불행과 나중 태어난 사람의 행운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조상 삼족, 친가·처가·외가의 삼대, 곧 9족의 행적에서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분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요한복음’ 8장 6~11절)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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