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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의 마켓 나우] AI 혁신에 필요한 건 청사진보다 멍석

중앙일보

2026.07.01 08:10 2026.07.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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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2008년 금융위기가 월가를 강타하던 무렵, 실리콘밸리 한구석에서도 나직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래픽 칩 제조사 엔비디아였다. 노트북 칩 결함 ‘범프게이트(Bumpgate)’로 주가가 80% 넘게 무너졌지만, 시장이 더 못마땅해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젠슨 황은 당시 시장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던 범용 병렬 연산 플랫폼 쿠다(CUDA)를 2006년부터 밀어붙이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비슷한 무렵, 토론토대학의 어느 연구실. 제프리 힌튼 교수가 이끄는 신경망 연구진은 학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한때 뇌과학의 총아였던 신경망 이론은 이제 ‘연산만 잡아먹을 뿐 쓸모는 없다’는 핀잔 속에 먼지 쌓인 다락방 유물 취급을 받았다. 불씨를 지켜준 것은 성과 지표도 납기도 닦달하지 않은 캐나다 고등연구원(CIFAR)의 간섭 없는 연구비였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전혀 무관해 보이던 두 세계는 2012년에 극적으로 조우한다. 힌튼의 제자들은 시중에서 파는 게임용 그래픽카드 GTX 580 두 장을 침실 컴퓨터에 꽂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쿠다로 아무도 믿지 않던 신경망을 돌렸다. 버림받은 기술 둘이 만났을 때 탄생한 ‘알렉스넷(AlexNet)’은 그해 이미지넷(ImageNet) 경진대회에서 2위를 까마득히 따돌리며 세상을 뒤집었다. 오늘의 딥러닝 혁명의 서막이다. 만약 이 역사가 관료의 기획서 위에서 쓰였다면, 침실의 게임 카드 두 장으로 강아지 사진이나 분류하겠다는 ‘기행’은 결재 서류의 첫 칸도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꾼 창의성은 완성된 청사진보다, 실패를 허용하는 환경에서 더 자주 태어난다. 요즘 여의도에서는 AI 패권을 쥐겠다며 수십조 원짜리 국가 주도 인프라와 마스터플랜을 앞세운다. 그러나 통제된 온실에서는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이 교훈을 놓친다면 K인공지능 프로젝트도 혁신의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

국가의 진짜 역할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점쟁이가 아니라, 누구나 엉뚱한 상상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도구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다. 5000만 명이 저마다의 AI 도구를 설계하고 또 실패해 볼 모래밭을 깔아주는 것, 소비자로 머물던 국민을 ‘국민개발자’로 돌려세우는 일,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인프라다. 토론토의 침실을 지킨 것이 닦달 없는 연구비였듯, 국가가 댈 것은 명령이 아니라 멍석이다.

아시모프의 말로 회자되는 경구처럼, 위대한 발견을 예고하는 소리는 ‘유레카!’가 아니라 ‘어,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중얼거림이다. 정치가 할 일은 그 엉뚱한 중얼거림이 큰 불꽃으로 번지도록 비바람을 막아주는 튼튼한 요람이 되어 주는 것. 딱 거기까지다.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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