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취재일기] 축구협회 본때 보이겠다는 정부, 학교 운동회부터 먼저 열어라

중앙일보

2026.07.01 08:12 2026.07.01 13:1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해준 스포츠부 기자

이해준 스포츠부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체코전 승리 후 청와대는 물론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축하 메시지를 쏟아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고위층의 축전이 전달되는 건 한국 스포츠의 오래된 풍경이다. 남아공전 참패로 여론이 돌아서자 금세 얼굴을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한발 더 나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남아공전 패배 직후 SNS에 축구협회 특별감사를 예고했다.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무능과 부실의 원인을 가려내겠다고 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축구 행정 전반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겠다”고도 했다.

축구협회장 선거 방식에 대해서도 “허탈감에 빠진 국민의 간절한 열망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못 할 것”이라며 변경을 압박했다. 경기 단체의 헌법과도 같은 정관을 뛰어넘는 방안을 찾겠다는 뜻 같은데, 법을 집행하는 정부 기구 수장의 발언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부 개입을 단호히 거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이번 감사가 실질적인 개혁은커녕 또 다른 땜질이나 국제적 망신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12일 체코전 때 한국 대표팀 응원에 나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체코전 때 한국 대표팀 응원에 나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그런데 정부가 호통을 칠 자격은 있나.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저변 확대가 필수적이다. 인구 절벽 시대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은 뛰어놀 수 없다. 전국 수백 개 초등학교에서 점심시간 축구가 금지됐다. 안전사고 책임이 두려운 학교들이 택한 극단적인 자구책이다. 주민 소음 민원이 무서워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에게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 편지를 담벼락에 붙이고 나서야 운동회를 여는 학교도 있다.

뛰어놀 공간을 잃고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제2의 손흥민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육부는 소음 민원과 안전사고 책임을 학교장과 교사 개인에게 떠넘겨왔다. 문체부 역시 학교 체육이 무너지는 과정을 수수방관했다. ‘학교 체육 활성화 방안’ 같은 생색내기 정책을 발표했지만, 아이들이 실제로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법적·제도적 보호막은 만들지 않았다. 국회의 지적이 나오고 언론의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부랴부랴 점검에 나서는 뒷북 행정을 반복하고 있다.

귀찮은 설거지는 외면하다가 밥상이 차려지면 날름 숟가락을 얹고, 밥상이 엎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호통을 치는 꼴이다. 축구협회를 향해 회초리를 들기 전에 문체부는 학교 운동장 문이라도 먼저 열어라.





이해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