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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시시각각] 호남 반도체, ‘종이팹’ 그쳐선 안 된다

중앙일보

2026.07.01 08:20 2026.07.02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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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부국장

정효식 사회부국장

“실패하면 다 같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 1968년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이 포항 바닷가 황무지에 제철소를 처음 지을 때 현장에서 직원들을 독려하며 한 말이다. 박 전 국무총리는 생전 2004년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절박했던 분위기를 증언했다. 그로부터 1973년 포항제철 1기 설비를 완공할 때까지 대일청구권 자금 1억1948만 달러를 포함해 당시 원화로 1204억원, 직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공사비의 3배가량이 들었다. 이후 10년간 2·3·4기까지 설비를 확장하는 데 2조원 이상이 더 투입됐다고 한다. 포항제철은 박정희 정부 시절 대한민국 경제 구조를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한 산업화의 신호탄이었다.

중화학공업 육성 비교해 약 20배
입지·투자 시점 등 핵심은 미정
전력·용수 없이 발표만 서둘러

박 정부는 이후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세워 8년간 철강, 조선, 기계, 화학, 비철금속, 전자 등 6개 부문을 전략 업종으로 발전시키는 데 88억 달러(약 4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 결과 울산·여수(석유화학), 구미(전자), 창원(기계), 거제(조선) 등에 거대 산업단지가 차례로 조성됐다. 이를 물가 상승을 반영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60조원,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반영한 가치론 240조원에 이른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투자 대비 명목상으론 1000배, 실질가치론 약 20배 규모다.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프로젝트엔 삼성전자 2655조원, SK그룹 2100조원 등 총 475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다. 여기엔 삼성전자 평택·용인(2030조원), SK하이닉스 용인(600조원)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이미 진행 중인 투자도 포함돼 있다. 신규 사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팹(각각 2기) 신설에 800조원을 투자하는 서남권(호남) 반도체 사업이 가장 눈에 띈다. 별도로 해남 태양광발전단지 솔라시도 등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도 각각 수십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남권 투자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부]

서남권 투자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부]

산업통상부는 반도체의 수도권 집중으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해 새로운 성장 거점 발굴이 필요하다며 호남을 한국형 AI 산업혁명,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하겠다고 설명했다. 호남 반도체 육성으로 1% 저성장을 탈피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균형발전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대신 충청권에는 81조원을 투자해 대규모 HBM 패키징 팹을 건설하고, 부산·구미 등 동남권은 기존 반도체 산업 기반을 활용해 ‘소부장 혁신 거점’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를 마친 뒤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항공시찰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를 마친 뒤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항공시찰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통령은 발표 이튿날 광주를 찾아 역사적, 정치적 의미도 직접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수도권, 영남에 자원과 기회를 올인해 산업화 기반이 됐지만 동서 간 엄청난 차별과 격차가 발생했다. (반도체가) 호남 소외와 배제, 슬픔과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동서가, 수도권·지방이 균형 성장하는 첫출발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다. “차별과 설움을 견뎌내며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 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국민적 보상으로 생각하고 차질 없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도 했다.

산업화 차별과 민주화의 보상으로 호남 반도체를 추진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졸속 추진이다. 구체적 입지, 투자 시점 등 800조 사업 핵심 사항이 모두 미정이다. 노무현 정부 세종시·혁신도시, 이명박 정부 4대 강 개발 등 과거 대형 국책사업과 달리 3대 메가 프로젝트는 기업 주도인데 검토 단계에서 발표를 서두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도체 팹 입지 선정에 필수인 안정적 전력 및 용수 확보 방안 마련에만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경제성, 환경 영향 등도 앞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재 여권에 바쁜 일정이라곤 시대착오적 ‘친노 적통’ 논란으로 시끄러운 더불어민주당의 8·17 전당대회밖에 없다. 부디 당내 정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정효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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