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지난달 29일 사퇴한 가운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조만간 약속했던 대로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둔 지난달 29일 “북중미 월드컵 이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홍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으로 국민이 대표팀을 외면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중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월드컵 폐막일은 오는 20일이다. 정 회장이 사퇴하면 축구협회는 이르면 월드컵 직후, 늦어도 사직 뒤 60일 이내에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협회로서는 회장 선거를 준비하는 동시에 새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월드컵 참사 반복을 막기 위한 대한축구협회의 대수술이다.
한국 축구의 중대한 분기점을 앞두고 축구 전문가, 원로, 지도자, 구단 관계자 등 축구계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었다. 대부분은 인맥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는 ‘혁신 마인드를 가진 리더’를 새 회장의 자격으로 꼽았다. 신문선 명지대 초빙교수는 “가장 시급한 것은 현대가(家)가 오랜 기간 축구협회를 이끌면서 형성된 카르텔을 깨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치러진 제55대 축구협회장 선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당시 선거는 192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183명이 투표했고, 유효표 182표 중 156표를 얻은 정몽규 회장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신 교수는 “정 회장이 물러난다고 해도 현재 구조라면 또다시 기존 세력이 지지하는 인물이 회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회장은) 오염된 축구인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도록 선거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선거인단 규모(기존 100~300명)를 대폭 확대해 특정 인맥이나 기득권 세력이 선거를 좌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축구협회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이미 논의에 들어갔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라, 선거 제도를 바꾸려면 체육회 정관부터 손봐야 한다. 일단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꿔서 기존 등록 선수와 심판, 심지어 팬들까지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구도로 전개될 수도 있다. 현 규정으로는 새 회장 선거는 9월 중순경엔 마무리돼야 하는데 일정이 촉박하다.
“축구계 사정을 잘 알고 스타 출신 축구인이 새 회장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을 비롯한 2002 한·일 월드컵의 주역 등이 새 회장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축구 선수로 명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축구협회의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은 맞는가. 박지성은 전북 현대에서 구단 행정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유명인이 아니어도 행정력이 검증된 인물에게 맡기자는 의견이 많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축구협회 개혁은 방향을 설정하고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정 회장이 후임자를 낙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기업인 중에는 선거까지 치러가면서 회장에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