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발 마케팅에 스타일이나 디자인 언어가 아니라 숫자가 언급되고 있다. 충격을 37% 더 흡수하고, 발목 에너지 소모를 47% 줄인다는 식이다. 아름답게 돋보이려 신었던 하이힐의 시대에서 발이 편안한 운동화의 시대로, 이제 더 나아가 회복하는 신발로 넘어가고 있다. 이른바 ‘리커버리(recovery·회복) 슈즈’의 부상이다.
운동선수 신발이 일상으로
최근 기술력을 강조하는 기능성 슬리퍼, 뮬, 플립플롭 등 리커버리 슈즈 카테고리가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우포스.' 사진 LF
리커버리 슈즈는 운동이나 장시간 활동 후 발과 하체의 피로 해소를 돕도록 설계된 기능성 신발을 말한다. 보통 푹신한 쿠셔닝과 발의 아치를 보강해 줄 수 있는 탄탄한 구조, 충격을 흡수 및 분산해 관절의 부담을 덜어주는 두툼한 밑창이 특징이다.
주로 마라토너 등 운동선수가 고강도 훈련 뒤, 혹은 재활이 필요한 이들이 회복을 위해 신는 전문 영역의 제품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리커버리 슈즈가 운동 여부와 무관하게 온종일 신는 일상화로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누구나 운동선수처럼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웰니스 시대에 발의 건강, 회복 역시 일상으로 들어온 셈이다.
6개월만 누적 판매 12만족
국내서도 리커버리 슈즈 브랜드 론칭이 잇따르고 있다. 패션 기업 LF는 지난 1월 미국 리커버리 슈즈 브랜드 ‘우포스’를 국내에 정식 론칭했다. 자체 개발한 우폼(OOfoam™) 소재와 특허 풋 베드(깔창 구조)를 적용해 충격을 흡수하고, 발목의 에너지 소모를 최대 47%까지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LF에 따르면 우포스는 국내 공식 전개 이후 약 6개월 만에 올해 누적 판매 12만족을 달성했다. 지난 4월 이후에는 매월 전월 대비 100%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내 정식 론칭한 미국 리커버리 슈즈 브랜드 '우포스.' 사진 LF
패션 기업 하고하우스도 지난 4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기반 리커버리 슈즈 브랜드 ‘루쏘 클라우드’를 국내 정식 유통하고 있다. 창립자 존 부세미(Jon Buscemi)가 저스틴 비버의 호텔 슬리퍼 착용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2020년 론칭한 브랜드다. 발바닥 아치를 지지하는 ‘아치 서포트’ 구조를 적용하고, 3중 레이어(층) 구조의 쿠셔닝과 가벼운 IP-EVA 소재를 사용해 장시간 착용 시에도 발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발바닥 아치를 지지하는 아치 서포트 구조를 적용한 루쏘 클라우드. 사진 하고하우스
그냥 ‘쪼리’ 아니라 리커버리 슬리퍼
여름이 다가오면서 이른바 ‘쪼리’의 세계에도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 편안함과 회복이 플립플롭(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스트랩이 있는 슬리퍼)을 고르는 핵심어가 된 것이다. 생체 역학 기술을 앞세운 ‘핏플랍’, 발아치 서포트(보강)를 전면에 내건 호주 브랜드 ‘아치스’ 등이 대표적이다.
여름 신발의 대명사인 '쪼리'에서도 발의 편안함, 기능성이 강조된다. 왼쪽 핏플랍, 오른쪽 아치스. 사진 각 브랜드
핏플랍은 지난해 9월부터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국내 사업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5개 단독 매장 개점에 이어 올해는 매장과 팝업 스토어를 포함해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구축할 계획이다. 단지 시원하기만 한 슬리퍼가 아니라, 평발이나 족저근막염이 있어도 부담 없이 신을 수 있는 기능성 여름 신발을 찾는 수요가 그만큼 뚜렷해진 것으로 보인다.
운동화 시장에서도 디자인 경쟁을 넘어 편안함을 강조하는 ‘컴포트 화’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메리노 울 원단을 사용해 ‘걷기 편한 신발 브랜드’를 표방하는 ‘르무통’이 대표적이다. 르무통은 2017년 론칭, 지난해 연 매출 1474억원을 돌파했다.
걷기 편한 신발, 편안한 신발로 빠르게 인지도를 확장해가고 있는 르무통. 사진 르무통
팬데믹으로 시작, 러닝 열풍이 불붙여
이런 흐름의 뿌리에는 팬데믹이 있다. 재택이 일상화하면서 편한 신발로의 전환이 이뤄졌고, 이 전환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바깥 활동이 정상화된 뒤에도 하이힐이나 구두 등은 좀처럼 신발 카테고리 상위권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그 빈자리를 플랫 슈즈·로퍼 등이 메우고 있다.
러닝 열풍도 리커버리 슈즈의 부상에 영향을 줬다. 최근 2~3년 사이 러닝이 20·30세대의 대표 취미로 자리 잡으면서, 잘 달리는 것만큼 잘 회복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고강도 러닝 후 발과 무릎을 쉬게 하는 리커버리 슈즈를 찾는 러너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호카’ ‘살로몬’ ‘아크테릭스’ 등의 리커버리 슈즈는 운동을 즐기는 러너 및 아웃도어 커뮤니티를 발판으로 인지도를 넓혔고, 여기서 검증된 회복 기능이 일상 소비로 흘러나오며 대중적 수요로 번지고 있다.
러너들 사이에서 운동 후 회복 슈즈로 인기가 높은 호카의 오라 리커버리 뮬. 사진 호카 인스타그램
회복은 이미 스포츠 테크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글로벌 패션 매체 보그 비즈니스는 지난달 마크 마코프스키(Marc Makowski) 아디다스 혁신 부문 부사장의 말을 인용해 “회복은 브랜드 디자인팀이 우선순위에 두는 점점 더 중요해지는 퍼포먼스 격전지”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회복은 글로벌 스포츠 테크놀로지 시장의 핵심축이며 브랜드가 돈을 벌 새로운 카테고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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