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도는 이민정책 현주소] 트럼프도 문 걸어잠그진 않아 정착보다 노동력 수입에 비중 “이민 줄여야” 여론도 우세 개방과 규제 왔다갔다 할듯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을 비롯한 연방 요원들이 뉴욕 맨해튼 연방 이민법원에서 심리를 마치고 나오는 한 이민자를 체포하고 있다. [로이터]
이민의 나라 미국은 이제 반이민 국가로 바뀌었나. 트럼프 정부의 가혹한 불체 단속과 이민 규제 앞에서 한인과 같은 이민자들은 깊은 회의를 느낀다. 미군에 복무해 훈장을 받아도, 수십 년간 성실히 납세했어도 작은 트집으로 추방되는 현실 앞에선 그럴 수밖에.
건국 이후 미국은 이민 문호를 열고 닫기를 반복해왔다. 트럼프 정부에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니다. 1882년 중국인배척법과 1924년 출신국 할당제가 대표적 제한 조치다. 반대로 1965년 존슨 정부는 출신국 차별을 폐지해 아시아와 중남미 이민을 크게 늘렸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필요에 따라 국경을 강화하거나 문호를 넓혀왔다. 오바마 정부조차 대규모 추방을 집행해 ‘최고 추방사령관’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오완석 변호사는 “미국 이민정책은 시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노동력이냐 안보냐에 따라 달라져 왔다”고 말한다.
LA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시민권 선서식에서 이민자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로 선서식이 열린 것은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김상진 기자
그 이민사의 시계추가 하필 건국 250주년인 지금 선별적 자국 우선주의의 극단으로 기운 모습이다. 정착의 문은 제한하면서 필요한 노동력만 빨아들이려는 도구주의적 실리주의 말이다.
트럼프 정부는 불체자 추방과 동시에 영주권과 시민권 심사, 유학생 체류 관리, 전문직 취업비자까지 정착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전반적으로 좁혀 왔다.
케이토연구소에 따르면 이민서비스국(USCIS)의 영주권 승인 건수는 1년 새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가족초청 영주권은 54% 줄었다. 시민권 승인은 202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고숙련 취업이민인 EB-1A 거부율도 1년 새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반면 산업 현장에선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국토안보부(DHS)는 올해 건설·조경·숙박업 등에 필요한 H-2B 비자를 약 두 배로 늘렸고, 농업용 H-2A 비자도 발급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직과 정착형 이민에는 높은 문턱을 세우면서도, 산업 현장에 필요한 외국인 노동력은 적극 받아들이는 것이다. H-2A는 법정 상한이 없어 추방된 불체자보다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저임금 노동력 확보를 통해 만성적인 인력난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민을 막는 게 아니라 필요한 이민만 골라 엄격한 통제하에 받겠다는 입장이다.
사법부의 제어력은 부분적이다. 대법원은 6월 30일 출생시민권의 폐지를 담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같은 날 다른 판결에선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며 하이티와 시리아 출신 주민들의 임시보호신분(TPS) 취소를 허용했다. 이로써 미국 내 약 130만 명의 TPS 소지자가 추방 위기에 직면했다. 사법부는 그저 법리에 따라 사안별로 판단할 뿐이다. 이민 규제에 대한 사법부의 관대한 판단을 기대하는 건 순진한 희망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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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미국이 반이민 국가로 완전히 변한 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이민의 장벽을 높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미국은 외부 인재의 유입을 통해 인구학적 역동성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갤럽의 연례조사에서 전세계의 잠재적 이주민의 15%가 미국을 행선지로 꼽았다. 주류언론들은 이게 역대 최저치라는 걸 강조했지만, 여전히 부동의 1위라는 건 부각시키지 않았다. 2위인 캐나다(9%), 3위 독일(5%)은 아직 한 자리 수다.
외부 인재의 유입에 의한 혁신과 문화적 개방성, 그리고 소프트 파워도 여전히 강하다. 중국이 쿵푸를 뽐내고 팬더를 키울 때, 미국이 ‘쿵푸 팬더’로 돈을 벌었다는 점 하나가 모든 걸 말해준다. 제작에 한국계 미국인 여인영 감독이 깊이 관여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리콘밸리 역시 무수한 이민자 엔지니어들의 힘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트럼프 이후의 이민 정책은 어느 방향으로 향할까. 미국인의 여론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갤럽의 2025년 연례조사에서 ‘이민 규모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줄여야”가 30%로 “늘려야”(26%)보다 많았다. “현상 유지”는 이보다 높은 38%였다.
밀입국자가 쏟아져 들어오던 바이든 정부 4년 동안엔 “늘려야”는 33%에서 16%로 반토막 났다. 반대로 “줄여야”는 30%에서 54%로 급등했다. 바이든은 인도적 차원에서 국경을 열었다지만, 반이민 여론을 키워놓은 꼴이 됐다. 반대로 트럼프는 이에 역회전을 걸었다. 이민정책의 시계추 현상을 보여주는 숫자다.
여론을 정책으로 구현시키는 경로가 투표다. 미국에선 매일 약 1만명이 18세 생일을 축하받고, 성인 9000명 정도가 사망한다. 하루 평균 1000 명의 새 유권자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인종이 히스패닉, 즉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다.
과거 민주당 집토끼로 알려진 이들이 요즘 달라졌다. CNN 출구조사에서 트럼프의 히스패닉 득표율은 2016년 29%였으나 2020년 32%에 이어 2024년엔 45%로 상승했다. 이민을 보는 시선이 트럼프와 더 가까워졌다는 뜻 아닐까. 미국에서 태어난 히스패닉 이민 2세들은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인식한다는 연구도 있다. 다음 정부가 국경을 다시 열어젖히긴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미국은 반이민 국가가 아니라 ‘누구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훨씬 냉정하게 계산하는 나라가 됐다. 자유의 여신상은 그대로 서 있지만, 그 문 앞의 입국심사관은 예전보다 훨씬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