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일잘러 페스타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팀장이 팀원에게 외부 업무 관계자와 하는 회식에 참석하라고 권했다. 팀원이 불참하겠다고 말했지만 팀장은 계속 참석을 독려했고, 결국 팀원은 자리에 나갔다. 이후에도 피해자는 회식 참여를 강요받았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호소했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2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개정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실린 법원 판단에 따르면 이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부담을 느낀 점은 인정되지만, 강제성 없는 업무상 권유에 그쳤고 모욕적 언사나 보복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사유서 등을 쓰게 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됐다.
노동부는 2023년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보강한 매뉴얼을 내놨다. 노동부는 “같은 상황이라도 노사 간 인식 차이로 갈등이 커지는 사례가 적지 않아, 현장에서는 보다 공정하고 일관된 조사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된 이후 관련 신고 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노동부가 집계한 결과 2021년 7774건이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6673건까지 늘었다. 직장 내에 만연해 있던 괴롭힘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을질’로 불리는 제도 악용에 대한 현장의 고충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번 개정 매뉴얼엔 다양한 판례와 사례가 조사 단계별, 판단 요건별, 행동 유형별로 담겨있다. 특히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와 인정되지 않은 사례를 함께 제시해 조사 담당자와 노사가 보다 쉽고 일관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같은 행위라도 강도와 빈도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매뉴얼을 보면 “대학 나왔는데 이것도 못 하냐” “너무 칼퇴근하는 것 아니냐”고 각각 한 차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적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 부적절한 언사라도 일회성에 그친 경우다. 다만 오랜 기간에 걸쳐 같은 사안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거나 사직을 종용하는 등 강도가 지나친 경우에는 일회성 행위라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박소현 노무법인 라움 노무사는 “과거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를 단순 나열하는 방식이라 신고가 남용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매뉴얼에 다양한 판단례가 포함되고 구체적인 인정·불인정 사례가 담긴 만큼 현장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노동부는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조사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해 이른바 ‘셀프 조사’가 금지된다. 조사위원회의 기피·회피 절차도 명확히 하고, 사업장이 자체 조사 결과와 판단 근거를 신고인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명시 했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남용 방지 차원에서 법을 개정해 판단 기준에 ‘지속성·반복성’을 추가하려던 것은 사실상 무산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이번 매뉴얼 개정을 통해 당사자들이 판단 기준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만큼, 현장의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인사노무그룹장은 “기존 매뉴얼에 실제 판례 사안이 보강되면서 실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크게 늘었다”며 “다만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만큼,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정 요건을 강화하거나 괴롭힘 신고 시 분리 조치 등 사용자가 취해야 하는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