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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닮은 아시아 통화 약세…루피아보다 더 흔들린 원화

중앙일보

2026.07.02 02:23 2026.07.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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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은행 환전창구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김경록 기자

2일 오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은행 환전창구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김경록 기자


강달러에 아시아 통화가 흔들리고 있다. 원화는 한 달 넘게 달러당 1500원대에 머물고 있고, 엔화는 40년 만의 ‘수퍼 엔저’로 회귀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와 태국 바트, 필리핀 페소 등 동남아 통화도 약세다. 아시아 통화의 동반 약세가 1997년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소환하고 있다.

2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6월 30일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7.5% 내렸다(환율은 상승). 루피아(-7.0%)와 바트(-5.6%), 페소(-3.8%), 엔화(-3.3%)보다 낙폭이 크다. 루피아는 한때 달러당 1만8000루피아를 넘어 사상 최저치로 밀렸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아시아 통화 흐름이 97년과 겹치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환율을 달러에 묶어둔 동남아 통화가 강달러 여파에 고평가됐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태국 바트화가 투기 공격에 무너졌다. 위기는 인도네시아·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번졌다.

이번에도 강달러가 기본 축이다.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5일 101.7까지 오르며 15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고, 여전히 101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5월 4.2% 올르며 3년 만에 최고를 찍자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영향이다. 중동발 유가 급등 여파로 에너지 수입국의 물가와 경상수지 부담이 커진 것도 주요 원인이다. 태국중앙은행은 지난해 159억 달러였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거의 ‘0’이 된다고 전망했다.

아시아 주요 통화 변동 추이

아시아 주요 통화 변동 추이


하지만 90년대 후반과 지금의 외환시장 구조는 다르다. 97년엔 고정환율제와 단기 달러 외채, 바닥난 외환보유고 탓에 아시아 외환시장이 한꺼번에 무너졌지만, 지금은 변동환율제 아래다. 환율이 충격을 흡수하고 있고 보유고도 과거보다 훨씬 두텁다. 태국 외환보유액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3%다. 태국 증권사 이노베스트X는 “동남아 통화 약세는 관리 가능한 국지적 스트레스”라며 “97년 같은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 위기 성격도 금융시스템 붕괴보다 고환율·고유가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원화 약세 역시 위기 전조로 보기 어렵다. 한국 5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70억 달러에 달해 외환위기 당시(300억~400억 달러)의 10배를 넘는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유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대신 외국인 주식 순매도,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유출, 엔저 동조화가 원화 약세를 일으키는데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날도 원-달러 환율은 하루 전보다 0.9원 오른 1555.8원으로 33거래일째 1500원대를 이어갔다. 메타가 촉발한 인공지능(AI) 공급 과잉 공포에 이날 삼성전자(-9%)·SK하이닉스(-14%) 등 반도체 주가도 추락했다. 코스피는 7.89% 하락하며 15거래일 만에 8000선을 내줬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3000억원어치를 팔고 나갔다(순매도).

물론 위기의 불씨는 살아있다. 아시아 신흥국 중 약한 고리로 인도네시아가 꼽힌다. 프라보워 정부의 국가 중심 경제 정책과 중앙은행 독립성 우려에 외국인 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었고, 원유 수출국이면서 정제유는 수입해 유가가 오르면 되레 경상수지가 나빠지는 약점도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이 한 달 새 세 차례, 총 1%포인트 금리를 올렸지만, 외환보유액은 2년 만에 최저로 줄었다. 증시도 올해 들어 약 29% 급락했다.

엔화

엔화


수퍼 엔저도 97년과 다른 불안 요인이다. 이미 수년간 누적된 엔저에 미·일 금리차와 캐리트레이드가 더해지며 구조적인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6월 말 장중 162엔을 넘어 40년 만의 최저까지 밀렸다. 일본 당국의 개입에도 하락세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 중심 공급망에 깊이 편입돼 원화가 엔화 변동에도 크게 영향받는 구조”라며 “한국은 반도체처럼 달러를 버는 산업이 있어 사정이 낫지만, 엔저 심화는 결국 달러 강세 심화를 뜻해 아시아 통화 전반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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