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한병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2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이 소수 야당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제도까지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병도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신청 및 유지 기준 강화와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입법 독주를 대놓고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국회 운영의 룰마저 입맛대로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은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합법적인 입법 저지 수단으로 도입된 제도다. 몸싸움을 막고 소수당에 밤새워 토론하며 버틸 권리를 부여한 것인데, 시작 후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180석)의 동의로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무제한 토론은 고사하고 그저 단독 통과를 24시간 늦추는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이마저도 민주당은 의사당에 나와 있는 의원 수가 재적 5분의 1 아래로 줄면 필리버스터를 멈추게 하는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 시절 이 제도를 활용해 여론전을 벌였던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고 태도를 바꾼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민주당은 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이 처리까지 최장 330일이 걸리는 기간을 축소하겠다는 명분으로 민생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들고 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한 마당에 야당의 제동 장치마저 무너뜨린다면 견제와 균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충분한 토론과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 전제될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반대 의견을 제도적으로 억압하고 의석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은 패권주의일 뿐이다.
민주당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니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가 가능한 조작기소 특검법 등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 정치사는 오만과 독선이 민심의 역풍을 부른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 민주당이 늘 거대 여당이리라는 보장도 없는 만큼, 당장의 편의주의를 위해 의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도를 거두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