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승부처였던 남아공전에서 이재성을 선발에서 배제한 것은 치명적인 패착이었다는 게 축구계의 지적이다.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의 보도로 알려진 한국축구대표팀 내분의 실체가 한 꺼풀 더 벗겨지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3차전 참사의 도화선이 된 손흥민(LAFC)·이재성(이상 34·마인츠) 선발 제외 사건은 선수단 내부의 갈등 골이 깊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멕시코와의 2차전 직후 라커룸 분위기는 경색됐다. 복수의 핵심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손흥민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발언이 길어지자, 홍명보 감독이 선수단 이동을 지시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홍 감독이 직접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 갈등의 촉발제였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인터뷰와 관련해 명시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감독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었음에도 멕시코전 이후 대다수 후배 선수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 응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강경하게 보이콧 유지를 주장하던 손흥민은 인터뷰 없이 믹스트존을 통과했고, 이재성은 도핑 검사로 제외됐다. 고참들의 인터뷰 거부 기조 속에서도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마이크 앞에 선 것은, 보이콧 지속 여부를 두고 고참층과 후배 선수들 사이에 이미 온도차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 전말을 바라보는 축구계의 해석은 팽팽하게 엇갈린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후배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 자체가 고참들의 보이콧 강요에 대한 거부감과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며 불화설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홍 감독이 오현규를 선발로 넣어 상대 체력을 빼놓은 뒤 손흥민을 후반 조커로 투입하려 했던 전술적 판단”이라며 “이재성 역시 미국 평가전부터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 제외된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재성. [뉴스1]
이유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홍 감독이 남아공전이라는 단판 승부에서 손흥민과 이재성을 선발에서 배제한 것은 치명적인 패착이었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표팀 내 ‘언성 히어로(숨은 영웅)’라 불리는 이재성이 1, 2차전과 달리 결장하자 대표팀 내 패스가 잘 돌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세계적인 스타이자 핵심 자원인 손흥민을 전술적으로나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품고 가지 못한 리더십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24년 아시안컵 당시 발생한 ‘탁구 게이트(손흥민·이강인 충돌 사건)’ 이후 팀 분위기 정상화와 선수단 장악을 기치로 내걸고 카리스마를 지닌 홍 감독을 선임했다. 그러나 이번 북중미 월드컵 참사의 본질은 결국 감독의 ‘팀 매니지먼트 실패’였다. 대회 기간 이어진 인터뷰 보이콧 사태와 내부 균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리더십의 한계가 결국 조기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한편,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섰던 이재성은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이라 그 어느 때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승리의 기쁨이 아닌 패배의 아픔을 전해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하루라도 더 오래 이 축제를 함께하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 큰 욕심이었던 걸까”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