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7월 7일을 극복하는 법’이란 글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달 7일부터 시행돼 ‘7·7법’으로 불리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단정적 표현 대신 ‘~라고 주장한다’거나 ‘~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각종 맘 카페에도 “7·7부터 입틀막법 시행이에요. 인터넷 글 쓸 때 조심”과 같은 글이 잇따랐다.
평소 스레드 등 소셜미디어에 ‘좋아요’를 누르며 소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는 회사원 이다희(29·여)씨도 정통망법 시행을 앞두고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씨는 “글 쓰는 걸 통제하기 시작하면 동조 행위도 통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여당에선 ‘스타벅스 가야지’ 표현으로 야구부 해체 발언까지 나오는데, 혐오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정부라면 결국 정부 잣대가 무서워 국민들이 스스로 입을 틀어막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처럼 개정 정통망법 시행을 앞두고 2030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검열 포비아(공포증)’가 번지고 있다. 특히 에펨코리아·디시인사이드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제 정식 고발장이 아닌 간단한 신고만으로도 게시물이 삭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글이 적잖게 올라오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개정 정통망법 철회 청원’에도 5~6월 한 달 사이 1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해당 청원은 소관 상임위원회 회부 조건(5만명 이상)을 달성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강행 처리한 개정 정통망법은 온라인상 ‘허위조작정보’ 유통 시 발생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게 골자다. 또 하루 1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해당 정보의 삭제 및 차단 등 유통 방지 의무를 강제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각계의 우려 탓에 정통망법은 입법 과정부터 파행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2월 과방위 심사 단계부터 국민의힘은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명백한 온라인 입틀막법이자 포털 통제법”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민변·참여연대 등도 “공론장 위축이 우려된다”며 반대 뜻을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과방위 의결을 강행했고, 같은 달 본회의에서도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 종결한 뒤 범여권 단독으로 의결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통망법은 지난 1월 6일 공포 이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검열 포비아가 번지는 건 처벌 조항을 담은 대규모 규제가 새로 시행되는데도 모호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새 법령에 따르면 무엇이 허위 정보인지 가려내는 실무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산하 투명성센터의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받는 ‘사실확인 단체’(민간단체)가 전담한다. 결국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가 허위조작정보 여부를 최종 판단하게 돼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민단체의 우려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형태로 사실확인 단체들이 설립되면 정부가 예산 권한 등을 악용해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의 오경미 연구원은 “사실확인 단체 자체가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대응 수위를 놓고 여야 입장이 엇갈렸던 ‘스타벅스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사실확인 단체’가 내리는 결정을 둘러싸고 또 다른 정쟁이 유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부과된 징벌이 ‘자기 검열’이라는 연쇄 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도 크다. 일평균 이용자 100만명 이상의 네이버·카카오·메타 등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는 불법·허위조작정보 신고 접수 시 즉각적인 삭제와 계정 정지를 이행하고 투명성 보고서를 의무 제출해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는 “플랫폼이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사전 필터링을 가동하면서 합법적 정책 비판이나 권력 풍자마저 방어적 차원의 자체 검열망에 걸려 차단 당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검열 포비아가 극에 달하자 보수 야권도 적극 공세에 나섰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6일 ‘허위조작정보’ 개념을 통째로 덜어내고, 명백한 ‘불법정보’만을 규제 대상으로 한정하는 대체 법안을 발의했다. AI 검열에 대항할 이의제기 수단도 마련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허위 기준을 독단적으로 결정해 옥죄는 구조가 완성되면 권력에 대한 맹렬한 검증 기능은 마비되고 공론장은 회복 불능의 위축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 역시 “불리한 정보를 플랫폼이 알아서 걸러내는 거대한 ‘검열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며 “위헌 소지가 다분하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만큼 즉각 법 시행을 유예하고 재개정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악성 콘텐트 규제라는 입법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졸속 입법으로 인한 혼란상을 경고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이버 렉카 등 극심한 사회적 폐해를 막기 위해 거대 플랫폼의 관리 책임을 법에 최초로 명시한 것은 진전”이라면서도 “민간 팩트체크 생태계가 무너진 마당에 당장 누가 방대한 사실 확인을 감당할지 대안이 없다. 법 시행 후 벌어질 혼란을 알면서도 여야가 폭탄 돌리기만 해왔다”고 지적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장)는 “파급력이 지대한 법안임에도 공론화 과정과 여야 합의라는 기초적 절차조차 생략됐다”며 “개정법이 권력층의 비위를 덮고 의혹 제기를 봉쇄하는 보호막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정밀한 역기능 대비 없이 덜컥 법부터 통과시킨 대가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