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식의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독립기념탑 앞 도로를 따라 긴 펜스가 세워졌다. 입구엔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군인들이 배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노스다코타주 메도라에서 열린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개관식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긴 펜스를 중간에 놓고 미국은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섰다. 펜스 밖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펜스 안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모자를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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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따로 기념식’…미국을 둘로 갈랐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은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과 이들로 이뤄진 미국을 규정하는 정체성의 핵심이다. 정치가 아무리 갈등을 겪더라도 독립의 의미를 기릴 때만큼은 미국은 하나로 뭉쳤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진행된 미국 독립 250주년 개막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다. 당초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려던 이날 행사를 앞두고 가수들이 일제히 출연을 거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개막식을 '트럼프 집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2016년 의회가 초당적 위원회 ‘아메리카250’를 만들어 무려 10년간 정파를 초월한 독립 250주년 행사를 준비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을 통해 자신이 그리는 미국의 정체성을 반영한 기념식을 준비할 ‘프리덤250’이란 조직을 만들어 예산과 권한을 집중시켰다.
결국 이번 독립 250주년의 메인 기념식은 4일 워싱턴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따로 열린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프리덤250은 워싱턴 독립기념탑 주변에 ‘위대한 미국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미국 50개주(州)의 천막 부스를 설치했지만, 11개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독립기념일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박람회가 독립기념탑이 위치한 내셔널몰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에선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50개 주(州) 가운데 11개주가 행사 참여를 보이콧 하면서 이번 독립기념일은 트럼프 정부 들어 심화된 양극화가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박람회는 이미 시작됐지만 독립기념일을 사흘 앞둔 1일 찾아간 박람회 현장은 텅 비어있었고, 상당수의 주별 부스에는 아직 전시물 설치도 완료하지 못한 채 차단막이 쳐진 상태였다.
성조기 무늬의 옷을 입고 현장을 찾은 에밀리는 “뉴스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부스에 성조기가 아닌 남부군 깃발이 걸렸다고 하길래 직접 확인해 보려고 왔다”며 “독립 250주년의 중요한 시기에 미국이 정치적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박람회가 독립기념탑이 위치한 내셔널몰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행사장 입구에 군용차가 배치돼 있다. 50개 주(州) 가운데 11개주가 행사 참여를 보이콧 하면서 이번 독립기념일은 트럼프 정부 들어 심화된 양극화가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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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만들어온 250년 미국 역사의 퇴행”
로버트 샤피로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이번 독립기념식이 단순히 국내적 정치 갈등이 아닌 “과거 250년동안 ‘기회의 땅’으로 불렸던 미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민자들이 만들어온 역사적 흐름에 대한 역행 또는 퇴행을 공식화하는 선언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내셔널몰에서 열린 미국 독립 250주년 개막 연설에서 특유의 춤동작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개막식 연설에서 “지난 13개월 동안 미국으로 입국한 불법 체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강경한 이민정책을 자신의 최대 성과로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누구도 원하지 않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폐지하고 학교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을 퇴출시켰다”며 다양성을 포용해온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을 오히려 과시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진행된 미국 독립 250주년 개막식에서 전투기들이 상공을 날고 있다. 당초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려던 이날 행사를 앞두고 가수들이 일제히 출연을 거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개막식을 '트럼프 집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이러한 연설이 이어지자 일부는 연설 중간에 행사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개막식장을 빠져나가던 마이클 윌리엄스는 “여기는 진짜 미국이 아닌 트럼프 왕국”이라며 “아이들에게 잘못된 미국을 보여줄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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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우선주의 따른 동맹 외교의 전환”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교수는 이번 독립기념일이 그간 미국이 이어온 자유민주주의와 국제 분업 구조, 외교와 경제, 안보 정책 전반의 공식적 전환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개관식 참석을 위해 노스다코타주 메도라에 ‘프리덤 250’ 열차를 타고 도착한 뒤,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부터 일방적 관세·국경·반이민 정책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독립 250주년인 올해 들어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에 이어 이란전쟁을 벌였다. 그리고는 이번 독립기념일을 ‘미국에 대한 헌사의 날’(Salute to America day)로 명명하며 자신의 외교와 안보 정책을 미래 250년을 위한 노선으로 공식화할 뜻을 분명히 했다. 사바토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Next250: A National Mobilization’ 집회에서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계획한 행사에 맞서 전국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 예측 시스템 ‘사바토의 수정구슬’로 유명한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화한 ‘각자도생’의 국제질서가 쉽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대통령이 트럼프의 정책을 되돌리려 하더라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오히려 양당 어디서든 트럼프와 유사한 대통령이 다시 당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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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 전환…미·중 경쟁 속 ‘뉴노멀’ 되나
미·중 패권 경쟁 속에 국방비 증액, 미군 병력 재배치가 거론되는 가운데 관세를 지렛대로 삼은 대규모 대미 투자를 이행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미국의 변화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현지시간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스다코타주 메도라에서 열린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개관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샤피로 교수는 “중국의 부상은 세계 체제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라며 “동맹을 무시하고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모습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사바토 교수 역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다극 체제는 트럼프 이전부터 이미 불가피했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미국이 이전처럼 전체 자유진영을 홀로 이끄는 역할로 완전히 돌아갈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며 미국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내 정책으로 인해)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됐고,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우리를 비웃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미국의 황금시대가 막 시작되는 순간”이라며 “이번 기념일은 우리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시에 시야를 넓히고, 포부를 키우며, 미국이 이룰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일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