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 앞 화단에는 장미 나무가 많이 있었다. 봄이 되면 여러 색의 장미꽃이 피었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장미 향이 온 동네에 퍼졌다. 그 앞을 산책하는 사람마다 “장미꽃이 너무 예뻐요”, “장미 향이 좋네요” 등 한마디씩 했다.
철이 지나 가지치기를 할 때 과감하게 잘라 주었다. 그루터기만 남았을 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다음 해 봄이 되니 그 염려가 무색할 만큼 새 가지가 힘차게 뻗었고, 꽃은 더 크고 탐스럽게 피었다. 장미의 화려한 부활을 보며 생각했다. 모든 잘림이 끝은 아니라는 것을. 비워지고 잘린 뒤에 생명은 더 깊은 곳에서 힘을 모은다는 것을.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지난 1월,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영화상과 최우수 주제가상을 탔다. 2월에는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골든’이 OST 주제가상을 받았다. 3월에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상에 이어 주제가상까지 2관왕을 거머쥐었다.
‘케데헌’의 ‘골든을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이재의 수상 소감은 남달랐다. “문이 닫히는 상황에 놓인 모든 분께 이 상을 바칩니다. ’거절은 새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회‘란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 상은 절대 포기하지 말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회복력을 유지하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장내에 박수가 쏟아졌다.
트로피를 손에 든 그녀는 자신을 ’거절당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가수를 꿈꾸며 청소년기를 연습실에서 보냈다. 11살부터 무려 12년 동안이나 땀을 흘렸지만 끝내 데뷔하지 못했다. 함께 연습했던 또래들은 대부분 무대 위로 날아올랐지만….
그래도 음악이 좋았던 그녀는 작곡으로 눈을 돌렸고 능력을 인정받아 ’케데헌‘ 팀에 합류했다. 10대 소녀 시절 그토록 갈망했던 가수의 꿈을 마침내 30대 중반에 이뤘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걸그룹에서 탈락하면서 다시 노래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거절을 당한 것은 방향 전환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수의 꿈을 접던 날, 훗날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가 되어 ’골든‘을 부르고 골든글로브 트로피까지 거머쥐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연습생 때 피나게 갈고닦은 기량이 이재에게 선사한 마술 같은 선물이었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수필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장 교수는 서강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지만, 당시 그 학교에 박사 과정은 개설되지 않아 Y대학에서 박사 과정 시험을 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실에 들어서는데 네 명의 면접관 중 한 사람이 목발을 짚은 장 교수가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수에게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정화되는 마음을 느끼며 “그런 규정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인사까지 하고 면접실을 나왔다고 한다.
그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고, 좌절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한다. 장 교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미국 유학을 선택했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그 면접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 처음으로 국가고시가 생겼다. 시험을 미리 본 후 성적에 맞는 대학에 가는 제도다.
한국은 대학 입시를 일 년 중 제일 추운 계절에 치른다. 2교시 시험 도중 토사곽란이 났다. 추운 날씨에 계란 후라이를 먹고 간 것이 탈이 난 것이다. 60문제 중 20문제만 풀고 밖으로 나와서 토했다. 이번 시험은 망했다며 울며 집으로 가려는데 학부모 한 분이 나를 말렸다. 재수하겠다고 했더니, 재수하더라도 시험은 끝내라며 떠밀다시피 나를 시험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다른 대학에 입학했고 전공도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좌절감에 방황하며 수업도 빼먹기 일쑤였다.
3학년 채플 시간에 대강당에서 김옥길 총장의 설교가 있었다. 학생들이 너무 떠드니까 총장은 설교를 중단하고 “여러분,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귀중한 자리인 줄 모르십니까? 지금 학교 밖에서는 우리 대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사정이 안 되어 울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질책했다. 시끄럽던 대강당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순간 나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학교에 애착이 생겼고 수업에도 충실했다.
누구나 거절당함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알 것이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실망감과 인정받지 못했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럴 때 보통은 포기하고 다시 시도할 용기를 잃는다. 하지만 이제나 장영희 교수는 그 아픔을 딛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빛나는 성취를 이룬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좌절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다. 돌아보면 인생은 늘 뒤늦게 의미를 드러낸다. 처음에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거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나 장영희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주어진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눌러 담아온 좌절과 희망,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들이 그러했듯, 지금의 우리 모습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잘됨과 잘못됨은 늘 뒤섞여 있고, 오늘의 영광이 또 다른 시험이 되기도 한다.
오름과 내림이 빠르게 교차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쉽게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려 든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도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오늘 좌절하는 일이 있는가? 그 좌절은 다시 일어날 디딤돌이 되기도 하다.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꿈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