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해외 동결자금 일부 해제까지 내걸고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란이 통행료 징수 의지를 굽히지 않아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미 체결된 MOU를 놓고 핵 문제 등 후속 쟁점으로 넘어가기는커녕 합의 이행의 첫 관문인 해협 완전 개방부터 발목이 잡힌 셈이다.
스티브 윗코프 미국 중동특사(오른쪽)와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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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자금 푼다는 제안에도…이란은 꿈쩍 안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스티브 윗코프 미 중동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 전날(1일) 카타르 도하에서 중재국 측과 만나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보상을 이란에 제시했지만, 이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해협 통제권 주장과 통행료 징수 요구를 철회할 경우 해외 동결자금 중 수십억 달러를 풀어준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MOU 체결 후 해외에 묶인 약 1000억 달러(약 154조원) 이란 자금 중 카타르에 묶인 60억 달러(약 9조2000억원)를 우선 풀어 인도주의 물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고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자금 해제 논의도 지지부진해졌다고 WSJ는 보도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안에 공개적으로도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도하 협상에서 이란 대표단을 이끈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부 차관은 “호르무즈해협은 미국이 아니라 이란의 지휘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 안비야 중앙사령부도 “이란이 승인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은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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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 60일 조항, 통행료 불씨로
해협 개방을 둘러싼 충돌을 놓고 MOU 내용에서 이미 예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MOU에서 이란은 60일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의 안전 통항을 무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동시에 이란이 오만 등 걸프 연안국들과 해협의 향후 관리 방식과 해상 서비스 문제를 논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란은 이 조항을 근거로 60일 이후 해협 관리권, 통행료, 서비스 비용 문제 등을 다시 다루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번에 동결자금 해제를 앞세워 이란에 통행료 철회를 이끌어내려 하는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60일 무상 통항 이후 통행료 논의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 아니냐는 것이다.
11일 이란 호르무즈 해협 인근 반다르 압바스에 정박된 화물선. AP=연합뉴스
이란이 경제적 이해 때문에 통행료에 집착한다는 시각도 있다. WSJ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해 연간 최대 400억 달러(약 61조6000억원) 수익을 올리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해외 동결자금 일부를 풀어주겠다는 미국의 제안보다 해협 통행료를 장기 수입원으로 확보하는 쪽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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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의 자발적 기부금 절충안, 그러나 엇갈리는 셈법
해협 남부와 인접한 오만은 의무 통행료 대신 자발적 기부금 방식의 해상 서비스 기금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석유·해운 회사들이 해협 안전관리 비용을 자발적으로 분담하는 방식이다. WSJ는 “오만이 관련 기업들을 상대로 기금 참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란은 선박별 통행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서방과 걸프 국가들 사이에선 오만이 제시한 것처럼 일정 수준의 서비스 수수료는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블룸버그는 2일 소식통을 인용해 “유럽 주요국과 일부 걸프 아랍국 관리들이 긴장 완화 차원에서 수수료 부과 반대 입장을 누그러뜨릴 여지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 이전 상태로 호르무즈해협을 되돌릴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오만의 현실론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미국은 오만의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못 하고 있다. 통행료라는 이름을 쓰지 않더라도 해협 통항 과정에서 이란에 정기적 경제 이익이 돌아간다면 우회적인 통행료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 교착에 따른 물류 차질은 여전하다. 선박 추적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하루 선박 통행량은 지난 1일 기준 43척으로 일주일 전 75척에서 크게 줄었다. 전쟁 전 하루 100척 이상 선박이 통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정상화와는 거리가 상당하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이란 반다르 아바스 앞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한 선박들과 수영을 즐기는 주민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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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암살 변수까지…美 협상 부담 가중
해협 통제권을 향한 이란의 군사적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 전문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2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오만 쪽 남부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을 추적하기 위해 페르시아만 연안에 특수부대를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군사적 위협을 통해 이란이 승인한 항로 밖 우회 통항을 부담스럽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돌발 변수도 협상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지난 4월 종전 협상이 본격화한 뒤 이란 대표단 핵심 인사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을 암살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암살 시도가 이뤄질 경우 대화 중단은 물론 충돌이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고 본 미국은 중동 내 주변국에게 이스라엘의 암살 계획을 이란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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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우방 공조로 대미 압박
이란은 3일 우방국과 공조를 통해 대미 압박에 나섰다. 이란 ISNA통신에 따르면 갈리바프 의장은 이날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장례식 조문차 테헤란을 찾은 이고르 세르게옌코 벨라루스 하원 의장과 만나 “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며 “미국과 시오니스트 정권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란은 상응 조치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또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능력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던 와중에도 이란 미사일은 목표물을 타격했다”며 “이 때문에 지금은 누구도 이번 합의를 미국의 승리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은 방위력을 유지하면서 역내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주변국들과의 조율을 통해 미국의 어떠한 역내 개입도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