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제 77세지만, 노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소설은 아직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네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3일 발간된 새 장편 소설 『가호』를 여성의 시점으로 풀어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라카미가 자신의 장편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물론 여성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상상만 할 뿐”이라면서도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15세 소년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봤고,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여성의 시점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이 작품을 쓰기 전 미국 웰즐리여대에 머무르며 그런 분위기를 접한 것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작 『가호』는 가호라는 이름의 그림책 작가가 꿈에 나타난 개미핥기의 권유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뒤 잇달아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다뤘다.
그는 가호와 어머니의 관계를 이야기의 주요 축으로 설정한 데 대해 “부모와 자식에 관해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소설을 쓸 때마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며 “이번에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이었기 때문에 쓰기 쉬웠던 점도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고 밝은 인상이라는 평이다. 그는 “1980년대 몹시 추운 날 독일 함부르크의 동물원에 간 적이 있는데, 개미핥기 부부가 서로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며 “그것을 보면서 ‘아, 이런 모습 참 좋네’라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동물이 나오면 대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건강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입원할 정도의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입원하면서 체중이 17㎏ 빠졌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고, ‘이제 평생 글을 쓸 수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퇴원하고 운동을 하고 체중을 되찾은 뒤 다시 글을 굉장히 쓰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역시 기뻤던 것 같다”고 말했다.
3일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가호』. 신초샤 홈페이지 캡쳐
무라카미의 소설에는 ‘벽’이나 ‘숲’, ‘구덩이’, ‘우물’ 등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는 경계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이에 대해 “그동안 ‘이제부터 비현실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돌아옵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며 “저는 비현실에 대해 자주 쓰지만, 판타지를 쓰려는 것은 아니고, 비현실과 현실이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한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현실에 대해 쓰더라도 문체는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의 문체로 쓰고 싶다. 젊었을 때는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문체를 자주 썼지만, 이제는 문체는 리얼리즘인데 쓰고 있는 것은 비현실이라는 그 ‘낙차’를 즐기게 됐다”라고도 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기사단장 죽이기』 등 이전 작품들보다 제목은 단순한 편이다.
무라카미는 “단순하게 가고 싶었다. 가호라는 여성이 어떻게 성장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그런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호』라는 제목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호는 이 소설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것은 하나의 성장”이라며 “이 작품을 씀으로써 나 자신도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