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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 길은 잃어도 나침반은 잃지 않았다

Los Angeles

2026.07.0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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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시 갈림길에 서다
1. 플로이드 사건 현장을 가다
2. 돌고도는 이민정책 현주소
3. 정치 양극화의 종착점은
트럼프 시대 진영대립 격화
성조기조차 정치도구 간주
중도 사라지고 극단이 득세
시작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시계추 되돌릴 가능성 여전
2024년 11월 뉴욕시 민주사회주의자(DSA) 멤버들이 피켓과 배너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당시 뉴욕시장 후보였던 조란 맘다니(앞줄 오른쪽 두 번째)는 급진파 DSA의 조직적 유세에 힘입어 승리했다. [NYC-DSA 캡처]

2024년 11월 뉴욕시 민주사회주의자(DSA) 멤버들이 피켓과 배너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당시 뉴욕시장 후보였던 조란 맘다니(앞줄 오른쪽 두 번째)는 급진파 DSA의 조직적 유세에 힘입어 승리했다. [NYC-DSA 캡처]

성조기 철거 통보를 받은 크리스토퍼·에이미 쿡 부부. [폭스13 캡처]

성조기 철거 통보를 받은 크리스토퍼·에이미 쿡 부부. [폭스13 캡처]

그래프

그래프

지난달 캘리포니아 샌마코스의 한 주택소유자협회(HOA)는 20년 넘게 성조기를 걸어온 주민 크리스토퍼 쿡에게 철거를 요구하며 불응 시 100달러의 벌금을 통보했다. 35년간 깃발을 걸어 온 이웃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깃발을 제한한다는 게 HOA의 설명이었다. 반발한 주민들은 ‘성조기 게양의 자유법’을 근거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코앞에 두고 성조기가 정치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미국 사회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국기를 자부심과 애국의 상징으로 삼기도 조심스러운 세태가 됐다. 애국하자고 하면 프로파간다로, 사회 비판을 하면 비미국적이라고, 각각 공격받곤 한다.  
 
이는 깊이 팬 정치 양극화, 즉 진영 대립의 산물이다. 2024년 갤럽 조사에서 자신을 ‘중도’라 밝힌 미국인은 사상 최저인 34%를 기록했다. 또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9월 조사에선 응답자의 61%가 공화당을, 57%가 민주당을 “너무 극단적”이라고 답했다.  
 
양당 모두 중도의 구심력은 약해졌고, 양극단의 원심력은 커지고 있다. 공화당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포획당했듯, 민주당은 급진 정파 민주사회주의자(DSA)에 이끌려 다니고 있다.  
 
원래 MAGA의 출발점은 극우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구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국 정신과 자신감을 되찾자는 호소였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을 시작으로 여러 정치인이 돌려쓴 상용구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5년 이를 상표로 등록하면서 강경 우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공화당을 접수한 MAGA는 강성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을 더욱 오른쪽으로 이끌어 왔다.
 
반대편에선 DSA가 민주당을 숙주 삼아 제도권에 급진 좌파 블록을 구축하고 있다. 10년 전 6000명 안팎이던 회원은 이젠 10만 명을 넘어섰다.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조란 맘다니가 DSA의 회원이거나 그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다. 지난달 뉴욕주 민주당 경선에선 DSA 후보 10명 중 무려 9명이 승리했다.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의 급진 단체 활동가도 이에 포함됐다. 워싱턴DC, LA, 콜로라도주에서도 DSA가 민주당 현역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노아 스미스는 “민주당도 자기들의 MAGA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MAGA와 DSA라는 두 강경 포퓰리즘 세력은 좌우의 데칼코마니라는 얘기다.  
 
강경파가 득세할수록 정치는 투쟁으로 변한다. 각자 자신을 진압군으로, 상대는 굴복시켜야 할 반군쯤으로 본다. 극단적 진영 갈등은 ‘냉내전(cold civil war)’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성이 오가진 않지만 정치·문화·심리적 적대감이 내전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럴수록 국가의 해결 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통치의 교착상태에 자주 봉착한다. 독일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1940~2025)가 말한 통치불능(ungovernability)이란 바로 이를 가리킨다. 연례행사처럼 겪는 연방정부 셧다운, 의회의 당파적 표 대결, 선거 불복, 탄핵 시도, 정치폭력과 암살 시도까지. 트럼프 시대에 부쩍 잦아진 현상들은 미국이 ‘소프트한 통치불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제도적 처리능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인의 연방정부 신뢰도가 올해 17%로 역사적 저점이라는 퓨리서치의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국민은 국가를 믿지 않고, 국가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시계추처럼 움직여 왔다. 돌이켜 보면 미국이 초당적 협력으로 평온한 정치를 영위하던 목가적 시대는 거의 없었다. 남북전쟁, 뉴딜정책 등 역사적 사건이나 결단은 대개 극단적인 당파 대결의 결과물이었다. 반면 2차 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수용소 구금이나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 등 나중에 후회할 일들은 초당적 협조로 이뤄졌다.
 
최근 양극화와 관련한 설문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민주당 우파에선 DSA의 급진노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공화당 내부에선 MAGA를 부담스러워 하는 시선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MAGA 내부의 노선 갈등이 겹치면서 극단주의에 대한 보수층의 피로감은 역력해졌다. 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정부 말기로 향할수록 더욱 거칠게 표출될 전망이다.
 
트럼프 시대의 양극화와 분열을 미국 본연의 모습으로 단정하는 건 성급하다. 그렇지 않았던 미국이 오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는 공감대 자체가 사회적 각성으로 전환되는 기점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극단으로 향하던 시계추가 다시 중앙으로 복원될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250살 공화국이 길은 잃었어도, 나침반까지 잃은 건 아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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