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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떠오른다…세단 닮은 SUV, 전기차 닮은 하이브리드 [주말車담]

중앙일보

2026.07.03 14:00 2026.07.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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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코리아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필랑트'. 고석현 기자

르노코리아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필랑트'. 고석현 기자

준대형 크로스오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필랑트’는 르노코리아가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추진한 ‘오로라 프로젝트’의 핵심 모델이다. 신차 공개 전부터 시장의 큰 기대를 모았지만, 필랑트의 판매 성적표는 초기의 기세를 이어 가지 못하고 있다.

출시 첫 달인 지난 3월 4920대가 판매됐지만 곧바로(4월 2139대) 반 토막 났고, 그 이후 1201대(5월)→1324대(6월) 등으로 출시 첫 달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필랑트 판매량은 왜 저조할까, 차량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필랑트 하이브리드’를 타고 지난달 26~27일 서울~평창 등 왕복 약 350㎞ 거리를 주행해봤다.

검은색 필랑트를 처음 보곤 ‘흑표범’이 떠올랐다. 전장 4915㎜ 전폭 1890㎜의 준대형 SUV임에도 차체 비율이 낮고 날렵해 ‘세단의 탈’을 쓴 SUV였다. 그런데도 실내는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와 2열 공간이 여유로워 개방감 있는 모습이었다. 트렁크 공간도 골프 캐디백 3개는 넉넉하게 실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필랑트'의 운전석과 조수석의 헤드레스트는 레이싱카의 모양을 연상시킨다. 사진 르노코리아

'필랑트'의 운전석과 조수석의 헤드레스트는 레이싱카의 모양을 연상시킨다. 사진 르노코리아

필랑트는 SUV이지만 차체 비율이 낮고 날렵해 ‘세단의 탈’을 쓴듯 했다. 사진 르노코리아

필랑트는 SUV이지만 차체 비율이 낮고 날렵해 ‘세단의 탈’을 쓴듯 했다. 사진 르노코리아

주행감은 좋았고, 정숙성도 돋보였다. 하이브리드 특유의 모터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전기차를 모는 듯했다. 속도를 올릴 때도 자동변속이 부드러웠고, 250마력의 힘에 걸맞게 고속주행 구간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이상 속력을 낼 때도 엔진음과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고속 주행 때 노면 상황에 따라 주파수 감응 댐퍼가 감쇠력을 안정적으로 조정해줬고, 조향이나 제동 때도 차가 몸과 착 달라 붙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도로 사양을 고려해 주행을 돕는 르노의 액티브드라이브어시스트(ADAS)는 적응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특히 고속주행 중이나 차선이 혼잡한 곳에서도 ‘차선 이탈 방지 보조’ 기능이 작동했는데, 운전자의 스티어링휠 조향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공지능(AI)이 운전 습관을 분석해 주행 모드를 바꾸는 ‘AI 모드’도 뭐를 AI로 해준다는 건지 운전자 입장에선 잘 느껴지지 않았다. 2일간 평균연비는 약 18.9㎞/L로 뛰어난 편이다.

뒷모습은 '쿠페'이지만 트렁크 공간이 골프 캐디백 3개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했다. 사진 르노코리아

뒷모습은 '쿠페'이지만 트렁크 공간이 골프 캐디백 3개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했다. 사진 르노코리아

'필랑트' 상단엔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있어 실내에서도 개방감 있는 모습이다. 사진 르노코리아

'필랑트' 상단엔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있어 실내에서도 개방감 있는 모습이다. 사진 르노코리아

딱히 트집잡을 일 없는 차이지만, 문제는 소비자들이 ‘필랑트의 진가’를 잘 알아봐 주지 않는다. ‘오로라 프로젝트’는 만성적 신차 가뭄과 내수 부진 타개를 위해 글로벌 기술력을 모두 끌어모은, 르노코리아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프로젝트였다. 첫 작품으로 2024년 내놓은 중형 SUV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는 출시 전과 판매 초기 각종 마케팅 악재를 겪었기에, 필랑트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한국 시장이 ‘쿠페차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쿠페에 냉정하다는 게 뼈아프다. 국내 소비자들은 넓은 실내와 적재공간을 중시하기에, 쿠페형 모델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해왔다. 두 번째는 가격이다. 필랑트 하이브리드 가격은 4331만~5218만원인데, 이 가격대엔 경쟁상대가 너무 많다.

차급은 중형으로 필랑트보다 작지만,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3896만~4888만원,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가 3964만~5127만원이다. 예산을 좀 더 넉넉히 잡으면 수입 엔트리 SUV까지 선택지가 넓어진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다른 국산 브랜드의 감가가 유독 심한데, 이를 고려했을 때 소비자는 다시 한번 계산기를 두드려볼 수밖에 없다.



고석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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